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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목사님자료실 > 부흥설교(사랑의 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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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을 사랑하자.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20)

세상은 장차 두 가지로 갈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까지 자기만 사랑하다가 망하는 세상과 자기를 잊어버리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여 축복을 받는 세상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 주께서 강림하시느니라." 마음대로 골라잡을 것이다. 주를 사랑하고 축복을 받으려면 받고 주를 사랑하지 않고 저주를 받으려면 받으라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다.

1. 주를 사랑할 이유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나셨으니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느니라(요일 4:10). 피조물 된 우리는 그의 사랑으로 생겨나서, 그의 사랑으로 보호를 받고, 그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일 3:1), 그의 사랑으로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요 3:16).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셨는가? 우리 몸에 나타나셨다. 보라! 우리 신체의 신기한 구조 중에 우리의 머리를 보라. 또한 8만 그루의 머리털과 232개의 골격과 400조의 세포와 250만의 땀구멍,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 있지 않은 곳이 없다. 하나님이 나를 묘하고도 이상하게 만들었구나(시 139:14)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자연계에 나타나셨다. 일월성신, 호호탕탕한 천계를 보든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여름에는 녹음방초 성하고 가을에는 오곡백과 풍성하고 겨울에는 백설강산이 은세계를 이루어 보기 좋고, 놀기 좋고, 살기 좋게 지어놓은 사랑,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전부가 사랑이로다.

만물을 은혜와 사랑으로 주실 뿐만 아니라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절대 사랑이다. 이들을 둘이나 가져서 하나씩 가지면 상대적 사랑이지만 독생자를 주셨으니 절대가 되고 만 것이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인간이로되 내 자식이 어디에 가서 잘 있어도 언제나 아들에게는 아들, 아들 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고 딸에게는 딸, 딸, 딸 하는 부모의 심정이 아닌가?

나는 김해의 어떠한 곳에 가서 집회할 때, 그 교회의 여전도사와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깨달았다.

그 여전도사가 청춘 과부로 무남 독녀 하나를 길러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고, 과년이 되어서 사윗감을 고르고 골라 마음씨 좋고 가문 좋다고 하여 결혼시켜 주었더니, 남편의 사랑을 여간 많이 받아 왔지만 신랑이 신경질이 있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부부 싸움을 하여 아내를 때려서 눈퉁이가 부었고 쥐어박아 얼굴이 못쓰게 되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쫓겨 나온 것을 볼 때, 그 전도사는 기절하다시피 분개해서, 못살겠다고 - 그래서 에익 내가 지옥을 가더라도 이 놈하고 가서 좀 해봐야겠다고 딸을 데리고 가서 사위하고 한바탕 싸움을 하였노라고 - 차라리 자기를 죽이는 것은 관계치 않겠다고 하며 그 순하고도 어린 딸을 그 모양 만든 것을 볼 때 견딜 수 없이 분하더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여보, 자매. 당신은 그 딸이 가서 사랑 많이 받다가 한 번 매맞고 왔다고 분한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얼마나 많은 구박과 학대를 받으셨는가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그가 나실 때도 말구유에서 낳은 지 며칠 못 되어 헤롯이 죽이려 함에 교통이 불편한 그 당시에 머나먼 애굽으로 피난 가시고, 인간들을 극진히 사랑하사 저들이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만들어 주시고, 병들었을 때에 어루만져 치료해 주시고, 저들에게 유익한 말씀이라면 남김없이 주야로 설교해 주시고, 저들의 행복을 위하여 산과 들에서 금식과 기도로 철야하셨건만 악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반항하여 마침내 그 독생자에게 온갖 모욕과 박해로 정죄하여 자기들을 생각하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기들을 만져 주시던 그 손에 못을 박고, 자기들을 염려하고 애타시던 그 심장에 창칼을 들이대며 발악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죽으시면서도 행여나 성부께서 진노하실까 하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하시는 주님에게, 이리떼같이 달려드는 인간들을 다 진멸시켜야 마땅하지만 그 독생자를 죽이시고 악한 우리들을 살려 주신 하나님 사랑을 압니까? 이 사실을 압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치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원수 죄인 사랑하여 희생하셨네

주홍같이 붉은 내 죄 눈같이 씻어

너는 내것이라고 인쳐 주셨네.

둘째, 재림의 주님이 가깝기 때문이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 주께서 강림하시느니라. 우리가 애모(愛慕)하는 신랑 예수님 오실 날은 절박해 간다. 자연계의 징조를 보든지, 국제와 사회 징조를 보든지, 교회 상태를 보든지, 유대 나라가 독립하는 것을 보든지, 교회 상태를 보든지, 유대 나라가 독립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 최대의 소망은 신랑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로 예수 사랑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은 예비하라,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시리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택한 신부 맞으시려 언제 오시렵니까?

속히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붙잡고 이제인가 저제인가 눈물로 기다리는 신부 성도들의 순진한 사랑을 요구하신다. 새신랑이 새 신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 뿐이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요구하시던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다. 세상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가족보다, 명예보다, 지식보다, 권세보다,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2. 사랑의 성질

첫째, 사랑은 많이 애모하고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나를 생각하는지요? 부흥회하고 떠날 때는 신도들이 이름을 써다 주고 사진까지 주면서 기도해달라고, 자기도 꼭 목사님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한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웃는다. 얼마나 나를 생각해 주려는고. 아마 며칠은 생각나겠지. 얼마 지나면 꿈에 떡맛 보듯이 생각날 것이다. 그래도 군산에 갔더니 어느 전도사 할머니가 내 사진을 얻어 성경 갈피에 붙여 두고 15년을 기도했다고 해서 만나 보았다. 어떻게나 감사한지. 오늘날 내가 이만큼 힘을 얻어 돌아다니는 것은 이 강산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많은 까닭인 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나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 준 것보다 더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기도해 준 분이 계신데 "평안남도 대동군 사족면 건지리"의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이시다.

우리 어머니는 나 위하여 매일 네 번씩 기도하신다고 편지가 왔었다. 그 어머니는 벌써 17년 전에 기도하시다가 승천하셨다. 또 나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서울 신촌 영단주택 17호에 사는 내 아내가 나를 생각한다.

여러분이 아무리 나를 생각한대도 내 아내만큼 나를 생각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리 남의 영감을 생각하고 있겠소?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누구겠는가?

이사야 49장 15절을 보시오. "젖먹이는 어미가 그 자식을 잊어버릴지언정 나는 너를 잊어버리지 않으리라"고 하시는 그는 우리들의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그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며 그를 많이 애모하고 그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대개 모든 인격은 생각 많이 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보라! 돈을 많이 생각하면 수전노가 되고, 이성을 많이 생각하면 색마가 되고, 술을 많이 생각하면 술포대(술주정뱅이)가 되고, 아편을 생각하면 아편쟁이가 되고, 장사하는 것을 생각하면 장사꾼이 되고, 농사하는 것을 생각하면 농부가 되고, 정치를 생각하면 정치가가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를 많이 사모하면 자연히 하나님과 예수의 인격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실이 아닌가?

영국의 부흥사 스펄전은 말하기를 "나는 15분간만이라도 예수를 잊어버리면 타락한다. " 하였다. 우리는 주님 생각을 얼마나 하는가?

새벽기도도 변변히 못하고 해뜨도록 늦잠만 자고 일어나서 시간 급하다고 밥먹는 기도를 다 잊어버리고 한 절반 먹다가 "아이구 , 식사기도 잊어버렸구나" 하고 숟가락 들고 기도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분주히 왔다갔다하다가 저녁에 책이나 보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아기 어머니는 아기 젖 먹이다가 그대로 자버리니 글쎄 24시간 종일 주야에 몇 번이나 주님 사모하고 교통하여 보는가? 주님을 문밖에 세우고 잠꼬대하는 신부들이여, 회개하라!

둘째,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간격이 없는 것이다. 비밀이 없는 것이다.

부부간에 무슨 비밀이 있겠소.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서로 벌거벗은 몸으로 부끄러움 없이 지냈지만 죄가 들어온 후로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 두른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나님은 의의 빛이시니 털끝만큼도 어두움이 없느니라.

하나님과 사귀었다 하면서 어두운 데 행하면 거짓말하는 자이다. 외식의 껍데기 다 벗어버리고 적나라하게 주님 가슴에 안기라. 다시 말하면 양심적으로 살라는 말이다.

목욕탕에 들어가려면 다 벌거벗고 들어가는 것과 같이 우리 주님의 은혜의 목욕탕에 들어가려면 다 벗어버리고 들어가라. 우리 주님의 따뜻한 포옹을 받으려면 주님과 나 사이에 백지 한 장 가리움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밤에 어떤 전도사와 자는데 내 이부자리를 툭툭 건드린다. 자다 깨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목사님, 베드로는 닭이 울 때에 회개하였다지요? 저도 회개하겠어요." 한다. "아니 전도사가 아직껏 회개를 못하였는가?" 하니 "변변치 않은 것은 회개하였어도 차마 말못할 숨은 부끄러움을 아직 가지고 있어요. 목사님, 밤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고 그 죄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애통한다. 그래서 자다 일어나 같이 기도하는데, 그 전도사가 막 쏟아 놓는데 차마 말못할 모든 비밀의 죄악을 폭로할 때에 아! 나는 참으로 주님께 감사하였다.

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였던가. 말할 수 없는 죄악을 나에게 고백할 때 나는 그것을 붙들고 주께 간절히 기도하니 그에게도 성신이 충만하게 임한 것이다.

그는 지금 유명한 목사가 되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고 큰 기대를 가진 젊은 목사 중의 한 사람이다.

정직히 행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느니라(시 84:11). 주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

셋째,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는 수고와 희생이 있느니라.

작은 사랑에는 작은 희생이 있고 큰 사랑에는 큰 수고와 큰 희생이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희생시켰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33년간 녹아지고 쓰러져 피땀을 다 쏟아 우리를 구원하셨다.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무슨 수고와 희생을 아낄 것인가? 할머니에게 독 같은 손자를 업혀 보라. 무거운 줄도 모르고 "둥실 둥실 내 둥실"하면서 업고 다닌다. 그러나 사랑 없는 바윗돌이나 나무토막을 지워 보라. 아마 10분도 지지 못할 것이다. 시집 간 딸이 친정에만 오면, 남편 몰래 아들 몰래 다 뽑아 싸주며 어서 가져 가거라, 가져 가거라 하면서 아까운 줄 모르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를 사랑하면서도 주일 한 번 지키기도 힘들고, 연보 한푼 내기도 아깝고, 새벽기도 한 번 하기도 힘이 드니 이것이 진정 주를 사랑하는 것인가?

어느 교회 집사 중에 어떤 자매가 울면서 회개를 한다. 그녀가 하는 말이 "주일마다 꼭꼭 10환씩만 연보를 했었는데 이번 주일에는 그만 10 환짜리를 잊어버리고 와서 헌금을 할 때 연보대가 돌아오는데 핸드백을 열어 보니 천 환짜리 백 환짜리만 있고 10 환짜리를 아무리 찾아 봐도 없어서 그만 주일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인색한 것이 어떻게 주를 사랑한다고 할 것입니까?" 하고 통회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더러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쳐 제사를 하려 하였다. 마리아는 3백냥 어치의 향기로운 기름을 예수님 발에 붓고, 삼단 같은 머리채로 주님 발을 문질러 드렸다.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3.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한 그 계명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도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할지니라.

요한 일서 4장 마지막 절을 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 이는 우리가 주께 받은 계명이니라 하였다. 주를 사랑함은 그 형제를 사랑함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애인을 만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진정 사랑합니다" 하면서 애인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며 "참말 당신은 나의 생명이요, 기쁨이요, 내 소망이에요"라고 말하면서 못이 잔뜩 박힌 구둣발로 애인의 발등을 자꾸 밟아 찢어져 피가 흐르게 한다면, 그 애인은 "그 사랑 그만 두어라. 이 사랑 두 번 받다가는 정말 죽고 말겠소."라고 말하며 아픔에 못 이겨 애통해할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주님의 지체 된 형제들을 중상, 모략, 비판, 미움, 질투, 다툼으로 유린하니 주님의 가슴에 그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거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지어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우리의 할 일 무엇인가

믿음과 사랑 소망 중에

제일은 참된 사랑이라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

우리는 서로 사랑하자

사랑의 주님 계명지켜

서로 힘써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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