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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혜받는 비결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 81 : 10)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엘로힘(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라는 뜻이요, 여호와(하나님)는 창조하신 만물에 대하여 계약(契約)적 관계를 가지신 자라는 뜻이다. "나는 여호와"라는 말은 약속을 신실히 성취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풍성한 은혜가 여호와 편에 완비(完備)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를 위하여 갖추어 두신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한데 기갈 상태에서 허덕이는 교회와 신자들을 보면 얼마나 답답한지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생수와 같아서 태평양보다도 더 넓고 깊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곡간과 같아서 요셉의 창고보다도 더 풍성하다. 
그런데 태평양 물 속에 있는 물고기가 목이 말라죽고, 요셉의 창고 속에 있는 생쥐가 굶어서 죽었다고 하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일까? 그저 입만 벌리면 물이 들어오고, 입만 놀리기만 하면 기름진 곡식으로 창자를 꽉 채울 터인데, 입을 꼭 다물고 굶어 죽은 생명은 물고기나 쥐를 가리킨 말이 아니다. 오늘날 영적 생명이 고갈되어 있는 교회와 신자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한국 교회에 가로막혔던 구리 빗장을 부서뜨리고 은혜의 큰 문을 넓게 열어 놓으셨는데 왜 이다지도 말라죽어 가는지 모르겠다. 
유치장에 잡아가는 시절에도 밤을 새워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 하는데, 우리 한국은 지금 성경을 얼마든지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읽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오늘날 성경 애독자를 별로 볼 수 없다. 전도와 기도를 방해하던 일본 정치를 치워 주셨건만 왜 전도하고 기도하는 일에 이렇게 게으른지 모르겠다. 
한국 교회여!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이다. 구원하실 날이다. 깨어서 일하고 은혜를 주실 때에 믿음의 입을 크게 벌려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다시 우리 앞에 열린 문이 닫힐까 두렵다. 

기회를 잃지 말자 

세상 만사가 다 기회가 있다고 하여 성공과 행복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께서 내게 대하여 기회를 열어 주는 때가 있다. 
성공자는 이 기회를 잘 잡은 자요 실패자는 이 기회를 무심히 보다가 놓쳐 버린 자이다. 한 번 기회를 잃고서 영영 흑암과 고통의 길을 걷고 있는 자도 있고, 기회의 문이 열릴 때에 지체없이 들어가서 일생을 승리와 광명한 생애로 성공하는 자도 있는 것이다. 
서양의 어느 박물관에 머리는 말 대가리요 꼬리는 새 꼬리로 만든 모형 동물이 있는데, 그 이름을 "기회"라고 지었다 한다. 과연 기회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올 때에는 말 대가리와 같아서 그놈의 늘어진 갈기를 움켜잡고 올라탈 수가 있지만, 한번 뒤로 지나간 후에는 잡으려고 해도 새 꽁지같이 미끄럽고 날쌔서 도무지 잡을 사이 없이 놓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실 때에 한 번 기회를 잃은 뒤에는 후회하고 탄식을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성경에 보면 부자가 음부에 들어가서 후회와 탄식을 했으나, 기회가 이미 지났으니 쓸데없는 후회였다. 천당에는 아멘과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한 대신에 지옥에는 "걸걸" 소리가 귀가 아플 만큼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이 "걸"은 무슨 걸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죄를 짓지 말 "걸", 그래 아무개에게 그렇게까지 억울하게 하지 말 "걸", 너무 인색하게 하지 말 "걸", 아무개가 그렇게까지 권면할 때에 교회에 나날 "걸", 아무개하고 사과하고 지낼 "걸", 구제 좀 할 "걸" 하는 소리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옥이라고 하는 데는 기회를 잃은 사람들이 영원히 후회하는 곳이다. 

이 기회는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에게 제일 위험한 것은 은혜를 주실 기회에 자기를 빼놓는 일이다. 이번 집회는 아무 집사님이 은혜를 받아야 할텐데! 어느 누님이 이번에는 열심을 좀 얻어야 할텐데! 아무개 장로님이 좀 회개해야 할텐데! 자기 부족은 모르고 밤낮 남의 걱정만 하면 은혜받을 기회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교회를 위한 걱정이니까 교회를 위하여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 절대로 자기 영혼의 구원받을 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겸손하게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지 교회 부흥에 대한 염려와 노력이 자기 은혜를 대신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에 너무 닳아질 대로 닳아지고 찌들 대로 찌들어서 30년 혹 40년을 교회 생활했다는 것만 내세우고 스스로 위안을 받으며 자기 죄를 반성치 않는 늙은 마귀들아, 이 기회가 자기를 위한 기회요 부흥 강사의 말은 자기를 위한 말인 것을 깨닫고 겸손히 꿇어 엎드려 자기를 반성하라! 

지금이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지금은 자기가 살았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 순간적 시각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고로 지금이 자기 것이지 조금 후에나 내일이 자기 것은 아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요, 과거도 아니고 장래도 아니다. 지금이라고 하는 이 순간을 무시하는 자, 즉 내일로 미루는 자는 장래 생명은 어떤지 모르나 현재 생명에서는 죽은 자이다. 그런즉 자기가 살아서 호흡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의 생애를 살아야 하는 것같이 지금이라고 하는 그 생명을 은혜와 믿음 중에서 살아야 한다. 
바울은 "광음을 아끼라 이때가 악하니라," 또는 "오늘이라고 하는 동안에 피차 권면하여 죄에 유혹됨을 면케 하라" 하였고, 야곱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성에 가서 장사하여 이를 얻겠다하는 자들아 너희들의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들이 교만함으로 자긍하니 이 같은 것은 다 악한 것이니라" 하였으니 이런 말씀은 우리에게 "지금"의 의식을 철저히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과거에 은혜받은 것 또는 자기 성공한 것만 자랑하는, 노루 때린 몽등이 3년 우린다는 격으로 지나간 일만 자랑하며 딱 버티고 진취하지 않는 신자가 있는 것도 큰 걱정이고,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실패한 것만 생각하고 그저 주저앉아서 번민 고통만 하고 자포 자기하여 힘을 내지 않는 자도 있는 것이 큰 걱정이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서 툭툭 털고 다시 가면 그만인데 넘어진 자리를 돌아다보고 울고 탄식만 하고 있으면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고로 지나간 성공만 내세우고 있는 자도, 실패만 생각하고 일어서지 않는 자도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은혜를 구할 것이다. 잠시 후에 송장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지금이다. 천국은 지금 생명을 가지고 있는 현재 생명이 가는 곳이다. 

내일은 마귀의 날이다 

여기 우스운 이야기다 있다. 하루는 마귀들이 총회를 열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집어넣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의했다. 
한 마귀가 제안하기를 우리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의 영(靈)이 되어서 세상에 무신론자가 많이 일어나게 하여 각처에서 무신론을 선전하면 될 것이라고 한즉,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이를 반박하기를 틀린 말이다. 사람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다가도 무슨 환난을 만나서 급하게 되면 바다 가운데에서도 회개하고, 병상에서도 회개하고, 실패에서도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임종에도 마지막으로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르고야 마니 그것도 소용없는 말이다 한다. 또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그보다는 훨씬 좋은 계책이 있다고 말을 꺼내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 엄하고 무서운 신이라, 인간으로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고 제안을 하니, 또 다른 마귀 하나가 이 말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반대하기를,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래서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어 담대히 지성소에, 즉 하나님 보좌에까지 나간다는 성경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소용없는 말이라고 말을 막고 난즉, 회중은 잠시간 아무 대책이 없다는 듯이 잠잠하더니 저편 구석에서 늙은 마귀 하나가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말하기를, 사람을 지옥으로 집어넣는 유일한 묘책이 있는데 무엇이 그리 어려우냐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내일" "요다음" "차차"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이 말을 제일 좋아하고 또 안심하는 말이다 할 때에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었다 한다. 
그러면 내일, 요다음, 차차라는 말은 마귀 총회에서 가결된 명안(名案)이다. 많은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하면 예 차차 믿지요, 다음에 가지요 하는데 내일, 요다음, 차차 하다가 마지막에 아차 하고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마귀는 내일이라는 명안으로 우리를 지옥에 떨어뜨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른 대책으로 예수를 잘 믿고 신앙을 지속하는 비결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예수를 조금씩만 믿어라" 하는 말이다. 
신자들은 신앙 생활의 설계(設計)를 할 때에 40년이나 5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즉 늙어 죽을 때까지의 일을 예산하기 때문에, 지금에 잘못 믿는 것쯤이야 어쩌랴 하고 안심하고 죄를 짓는 
다. 심지어 혹자는 난봉을 좀 피우다가 늙어서 잘 믿겠다고 하고 타락하고 마는 자까지도 있는 것이다. 그런즉 장구한 생활을 한꺼번에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그날 그 시간을 잘 믿어 나가자는 말이다. 
어제의 성도가 오늘에 소용없고, 어제의 장로가 상관없다. 그날 그 시간에 신앙 생활 하면 그 생명이 천당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강도 보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리라" 하신 말씀을 보아도 어제의 장로가 아니고 오늘의 성도가 되어야 천당에 갈 것이 아닌가 ! 

결론 

우리 한국 교회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 은혜를 주시는 이때에 입을 넓게 열어 이 은혜를 받아들이자. 입을 열란 말은 무슨 뜻인가? 
첫째로 입을 열어 기도하란 뜻이다. 너희는 나에게 부르짖어 구하라 내가 너에게 응하리라(렘 33 : 3) 하셨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심은 그 중에 지각이 있어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도다(시 53:2) 하셨다. 
옛날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다 기도의 사람이었다.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누구에게도 비하지 못할 만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기도로써 난관을 타개했다. 
우리 신자가 이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 백성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어서 4천만의 입이 한꺼번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되면 이 강산에 복이 내릴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둘째로 입을 열어 죄를 고하란 뜻이다. 우리 민족의 죄를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살리실 날이 어느 때일까?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통을 벗기시고 명랑한 세상을 보내게 하실 날이 어느 날일까? 이는 우리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니느웨 백성과 같이 회개하는 날이라고 나는 믿는다. 목사는 목사의 죄, 사업가는 사업가의 죄, 정치가는 정치가의 죄, 교육가는 교육가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야 이 민족의 살 길 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줄 믿는다. 
왜 그런가? 죄를 자복하는 자가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신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어디까지든지 싸움으로 일삼는 이 민족에게 겸손한 마음이 먼저 필요하다. 
죄를 자복하면 정직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서로 속이고 서로 뇌물을 건네고 하는 이 백성, 상하를 물론하고 부정한 탁류에 떠내려가는 우리 민족은 먼저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복이 임할 것이다. 
죄를 자복할 때 참 평화가 온다. 요나를 토한 고기 뱃속처럼 시원할 것이다. 

셋째로 입을 열어 증거하란 뜻이다. "마음으로 믿은즉 의에 이르고 입으로 증거한즉 구원에 이른다"고 하셨다. 못을 박고서 못 끝을 사리는 것같이 우리의 믿음을 증거한즉 구원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구원을 얻으면 증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안드레의 증거로 유명한 베드로가 믿었고, 빌립의 증거로 나다나엘이 믿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을 받고 성중에 들어가서 열광적으로 전도할 때에 많은 사람이 주 앞에 나왔다. 
어제의 음부, 탕녀가 오늘날의 권사, 전도 부인이 되었다. 무식하니, 경험 없으니, 성경 모르니 하고 교회 일을 회피하는 자들은 이 사마리아 여인을 본받으라. 그리고 주 앞에 늘 새 은혜가 있는데 증거하는 자가 이 새 은혜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입을 여는 것은 내가 주의 계명을 간절히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편 119:131).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고 주린 자에게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네 입을 넓게 열라. 목마른 자가 물을 사모함같이 배고픈 자가 식물을 요구함같이 갈급한 심령에 가득히 채워 주시리라. 할렐루야! 

주의 계명 사모하여 입을 열고 바라는 

간절하온 그 심령에 큰 은혜를 주시리 

너는 네 입 넓게 열라 내가 채워 주리라 

진실하신 여호와의 참된 약속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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