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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의 생애와 설교

- 그의 부흥설교에 대한 설교학적 분석 -

정인교           

서울신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독일 본 대학 수학(신학박사)
한세대(전 순신대) 교수 역임, 현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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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Ⅰ. 들어가는 말

Ⅱ. 부흥설교의 특징과 역사

Ⅲ. 이성봉 목사의 생애
  A. 제1기: 소명을 위한 몸부림(1900-1924년)
  B. 제2기: 목회자의 모범(1925-1937년)
  C. 제3기: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1937-1963년)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역과 그 의미

Ⅳ. 이성봉 목사의 신학 경향성

Ⅴ. 이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에 대한 설교학적 고찰

A. 설교형태의 특성
  가. 본문사용과 제목설정의 경향성
  나. 설교전개상의 구조 분석

B. 부흥설교의 내용 분석
  가. 이성봉 목사의 부흥관
  나. 설교 내용의 경향성
    1. 구원의 복음
    2. 변화의 복음
    3.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복음
    4. 위로와 희망의 복음
  다. 부흥설교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Ⅵ. 나오는 말

-한국교회 부흥운동에서의 이성봉 목사의 의미와 부흥 설교를 위한 발전적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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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설교학을 공부하면서 언제나 떠나지 않는 의문 가운데 하나는 설교이론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설교모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질문은 오늘날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부흥회와 부흥사 그리고 부흥설교는 그 기능과 역할이 이제 종점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에 둘러싸여 고민하다가 만난 인물이 이 성봉 목사이다. 그가 무엇을 설교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를 살펴보기 이전에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라는 그의 좌우명(座右銘)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말았다. 그리고 목사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해답을 이 성봉 목사로부터 발견하고는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흥사라는 소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생명력이 있으며 여전히 오늘에도 유효한가 하는 당위를 그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이 논문은 신덕교회 창립 70주년 기념 학술논문으로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동기 이전에 이 성봉 목사는 설교학을 공부한 필자에게 매우 궁금한 인물이었고, 연구의 대상이었으며, 또 그분의 명성으로 인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필자의 다소 피상적인 느낌이 그의 삶과 설교를 연구하면서 확고한 신념으로 굳어지게 된 것은 얼마나 가치있는 수확이었던지....

이 성봉 목사는 삶 자체가 그리스도에 사로잡힌 분이었다. 투명한 삶이 그러했고, 성결한 삶이 그러했다. 그리스도가 삶에서 그대로 우러나온 분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스승이 없는 이 시대, 모범이 없는 이 시대에 이 성봉 목사는 성직자로서, 설교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따라가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분이다.

이 작은 연구가 단지 그의 설교에 치중함으로써 이 성봉 목사 전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음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를 통해 이 성봉 목사의 설교를 이해하고 오늘의 부흥설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면, 본 졸고의 존재 이유는 충분히 충족되었다 할 수 있으리라.


1997년 12월 성탄의 문턱에서

정 인 교


[처음으로]

 

1. 들어가는 말

본 소고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흥사로 한국교회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성봉 목사의 설교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설교의 한 장르로서의 부흥설교(Revival Preaching)가 갖는 특징과 설교사에서 이 유형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이다. 이 작업은 한편으로 이 성봉 목사의 정체성을 부흥사로, 그리고 그의 설교를 부흥설교로 평가하고 있는 기존의 입장이 보다 구체적인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설교가 설교자의 신학, 사상, 심성(心性), 상황, 회중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음을 고려 할 때, 이 목사의 설교가 일반적으로 부흥설교 속에 포함되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부흥설교의 일반적 역사와 특성을 살펴본 다음, 우리는 3장에서 이 성봉 목사의 생애를 소명 이전, 목회기, 부흥사역기의 3기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특별히 이 작업에서 우리는 이 성봉 목사의 신비적 체험이 그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목사 이전의 인간 이 성봉의 인품, 목회자로서의 철저성 그리고 부흥목사로서의 전형성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4장에서는 이 성봉 목사의 저서와 설교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신학적 경향성을 다루게 될 것이다. 특별히 설교란 설교자가 가진 신학을 토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이 성봉 목사의 설교와 신학의 접맥 여부를 자연스레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예비적 고찰을 토대로 5장에서는 본 연구의 중심 테마인 이 성봉 목사의 부흥설교를 설교학적 관점에서 연구, 분석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설교의 가장 기본 구도인 본문과 상황, 즉 이 목사의 부흥설교가 요청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시대상과 그의 부흥관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 시대를 향해 그가 외친 설교의 주제와 본문과의 상관성, 메시지를 담아 나른 설교형식, 회중에의 전달문제 등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 소고의 마지막 6장은 본 소고의 결론 부분으로서 한국교회 부흥운동에서 이성봉 목사가 차지하는 위치와 입장을 살펴보고, 교회가 있는 한 지속될 수 밖에 없는 부흥설교의 올바른 방향과 발전적 전망을 다룰 것이다.




Ⅱ. 부흥설교의 역사와 특징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라는 성경말씀과 같이 기독교는 영(靈)이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설교 역시 그 본래적 의미에서 영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해야 하는 종교적 담화(religiöse Rede)이고, 따라서 영적인 차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즉 일차적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말해야 하는 것이 설교이고, 설교는 단 한번의 구원사건과 이 사건의 현재화, 즉 하나님의 현존의 경험(Errinnerung und Begegnung)이라는 신적 차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설교는 회중이라는 구체적 대상과 상황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고, 이 회중을 이끌어가야 할 교육적, 목회적 차원 역시 설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게다가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자리를 차지하면서 설교는 교회의 내부-외부로부터 제기되는 질문과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해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경향은 설교 그 본래의 영적 차원 외에 또 다른 차원, 즉 지적, 정보적, 교육적 차원을 설교에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설교를 그 성격상 두 가지 흐름, 영적인 설교와 지적인 설교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설교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1)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대립은 먼저 고대교회의 교부들이 보여준 성서해석에서 그 희미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최초로 우화적 해석(Allegorie)을 도입했던 Origenes(185∼254년)가 영적 해석의 상징이라면 동시대의 안디옥학파는 이에 반대하여 문자적 해석을 강조했다. Origenes는 그의 저서 De principiis(기독교의 주요 교의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피력한다:


성서문서들은 성령을 통해 쓰여졌으니 문자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을뿐 아니라 어떤 다른 의미도 갖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숨겨져 있는 것이다.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말하자면 거룩한 비밀과 신적인 것들의 모상(模像)에 관한 암시일 뿐이다. 전체 율법이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 교회 안에 하나의 견해가 있을 뿐인데, 이에 반해 율법이 본래 의미했던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지혜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은혜가 수여된 그런 개인에게만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 위에서 Origenes는 본문 속의 황소는 세상적 욕망의 상징이 되어야 하고, 양은 어리석은 생각을, 비둘기는 위험한 공상을 뜻하는 것으로,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아온 리브가는 사람이 어떻게 성서의 샘에 나와 성령의 물을 길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심오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영적 해석은 특히 구약본문의 경우 문자적, 도덕적으로 덕성함양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케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성서를 탈역사화(Enthistoriesierung), 영성화(Spiritualisierung)한다는 면에서 대단히 조심스런 해석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동시대의 안디옥 학파는 알레고리가 가지는 이러한 위험을 직시하고, 본문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그 대안으로 내세운다. 즉 정확한 성서의 자구와 본문연관, 성서의 평행구들이나 시대사적 윤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해석을 근거한 설교는 당연히 알레고리적 해석에 근거한 설교가 저지르기 쉬운 오류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객관적 접근, 냉철한 이성적 사고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회중들이 설교로부터 역사적 정보는 얻을 수 있으나 자신을 성서 속에 대입시키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전자가 지나친 주관화, 회중의 본문 인물과의 동일화로 나간다면, 후자는 일정한 거리를 둔 건조한 관찰적, 지적 강연으로 내닫기 쉬운 약점들을 갖고 있다.

2) 고대교회가 성서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영적, 지적 강조의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면, 중세 후반기에서 스콜라 신학에 바탕을 둔 설교와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신비주의의 영적 설교는 이 두 요소의 주기적 반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장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카타콤에서 지상으로 올라온(313년) 이래 교회는 건물, 교리, 교회법, 예전 등 모든 면에서 종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발전은 긍정적인 것임에 분명했으나, 설교 자체만을 놓고 볼때는, 오히려 예배의 한 의식과 순서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교회가 핍박받던 시대에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설교의 역할은 비록 5세기와 13세기에 이르러 다소간 활력을 되찾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M. Luther의 종교개혁을 맞기 이전까지는 의식중심의 예배에서 설교 본래의 위치를 찾지 못한 채 기나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야 했,고 심한 경우에는 공예배에서 조차 생략되는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분위기로부터 잠시나마 설교의 중요성과 위치를 부각시킨 것이 바로 13세기 스콜라 신학에 바탕을 둔 설교이다. 그 때까지의 설교가 본문이 없는 설교, 이적과 기사 및 성인찬미, 풍자해석, 과장법의 특징을 갖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이 설교는 스콜라 철학의 분석적 논리적 방식을 설교에 도입한 새로운 방식의 설교였다. 다양한 주제의 도입(introductio thematis)과 그뒤를 이은 2, 3, 4부로의 주제 구분(divisio thematis: 이 중에서 고대 수사학의 산물인 3중 분할은 청중을 덜 지치게 하다는 점에서 권장되었다), 그 뒤를 따른 소분할(subdivision: 소대지), 분할 뒤에는 선포와 확신 부분(declartio et confirmatio partium)이 설교의 정교한 형식으로 통용되고 있었고, 이 구조는 다양한 예화와 교부들의 저작에서 인용한 증빙귀절들로 채색되어 설교되었다. 이 때의 설교가 분석적, 논리적 그리고 지적 측면에 치우친 설교의 경향성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나친 공론, 머리카락을 쪼개는 것과 같은 세세한 구분, 지리한 세부묘사 등의 특징을 갖는 설교는 회중의 가슴에 차츰 건조함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런 설교 자체의 문제점은 그 당시의 사회와 교회, 성직자와 성도들의 부패 등과 같은 외적인 요인과 맞물려 설교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었다.

스콜라 설교의 쇠퇴에 이어 새로운 신앙운동과 설교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소위 신비주의의 영적 설교이다. Clarke이 정의한 것처럼 신비주의(Mysticism)는 "사람이 신적 감화력에 대해 완전히 자기자신을 피동적으로 복종시킴으로써 무한한 존재(Infinite Being)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앙"인데, 이 신앙에 의하면 인간 영혼 속에는 신과의 접촉점(Anknüpfungspunkt)이 있기 때문에 어떤 중보자도 필요치 않으며, 이 접촉점은 영혼의 근저에(Seelengrund) 있는 하나님의 거주장소인 바, 절대자인 초월자가 유(有)의 모습으로 인간영혼 근저에 있는 무(無) 속에 은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세 신비주의의 대표적 인물인 Meister Eckhart는 이것을 영혼의 불꽃(Fünklein der Seele)으로 부르는데, 바로 이 접촉점이야말로 자기초월과 인간의 모든 영적 생활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기본원리로서 인간 안에 한정된 초월적 원리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 영적인 경험의 통로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영과 정신에 대하여 악한 존재인 육체와 물질을 부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비주의는 청빈과 독신생활, 복종을 강조하는 금욕적 생활을 강조한다. 동시에 육체와 물질에 대한 부정은 현세에 대한 무관심과 초연이라는 초윤리적인 이념과 직결되어 기성질서나 제도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M. 엑크하르트에게서는 "인간의 영혼 속으로 탄생하시는 하나님"이야말로 그의 개인적, 목표일 뿐아니라 선포의 목표, 그리고 전 구속사의 의미 자체였다. "만일 이 탄생이 내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만사가 나를 돕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 그것이 내안에 일어나는 것,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그의 고백은 그의 입장을 잘 드러내 준다.

신비주의 설교의 일반적 특징이 하나님과의 직접적 교통(Communication)과 연합, 마음 속에 탄생하는 신에 대한 강조,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보다 개인적 체험의 강조, 말씀의 출생과 인간의 영혼 안에서의 아버지 등의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면, 에크하르트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영혼의 정결, 청결, 순전함 등이 우선적으로 부각된다. 중세의 신비주의가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키며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이 운동은 기존의 교회 밖에서 주로 소그룹의 형태로 나타난 운동이기 때문에 교회 전체가 관련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설교가 탁발승들과 연결되면서 설교가 예배의 맥락을 벗어나게 된 점과 또한 교회 밖의 형식도 소그룹 차원과 접맥되어 교회와 대칭되는 평신도 경건생활(Laienfrömmigkeit)의 효시를 이루었다는 점, 그리고 교리적 건조한 틀을 깨고 종교 본래의 영적 차원에 주의를 집중했다는 점 등은 신비주의적 설교가 보여준 긍정적 측면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설교의 지적 성향에 대한 극복의 몸짓이라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3) 이러한 영적, 지적 설교 사이의 시이소같은 순환은 개신교 내에서도 예외없이 발견되는데, 우리는 그 효시로서 종교개혁 뒤에 나타난 정통주의(Orthodoxie)와 경건주의(Pietismus)를 꼽을 수 있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정통주의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개신교회가 구교와 재세례파의 공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지향한 신앙과 신학의 흐름을 일컫는 말이다. 이 때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도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육성할 수 있는가?"하는 것었다. 이런 관심 하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생동력 대신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 직접적으로 말씀을 듣는 대신에 역사적인 연구가 강조되었고, 성경에 대한 축자 영감론(Verbalinspiration)적 이해가 확산됨에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대신에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교과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설교는 회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전달과 가르침, 그리고 참된 교육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즉 이때의 설교는 철저히 정보의 전달(Vermittelung der Information)에 일차적 관심이 쏠린 교육설교(Lehrpredigt)였다.

하지만 이렇게 경직된 정통주의는 오래갈 수가 없었다. 정보와 지식에 억눌린 인간의 영성은, 역사가 보여 주듯이, 결코 긴 세월 동안 압사당할 수 없는 것이다.

정통주의를 극복하면서 관심을 교육(Belehrung)으로부터 인간을 일깨우는 데로(Erbauung) 돌린 영적 운동은 바로 경건주의이다. 이 운동은 한 마디로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운동이며, 형제사랑의 운동, 영적 각성운동이다. 이 때의 전반적인 관심은 개인, 개인의 주관주의(Subjektivitaet) 그리고 개개인의 경건성 촉진에 모아져 있었다. 따라서 이때의 설교 역시 교육보다는 일깨움을 목적으로 한 성서의 구원진리, 근본적인 갱신, 급격한 변화에 집중되어졌다. 즉 설교는 각 개인을 향한 선포(Verkündigung ad homine)였고, 설교는 바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신앙체험의 장소였다.

4) 이상에서 살펴본 흐름들이 광의적 의미의 영적 설교의 발흥이었다면, 지금부터 살펴볼 내용은 보다 협의적 의미의 영적 설교, 즉 대중 집회에서 행해졌던 인간의 영혼구원과 삶의 변화를 촉구했던 갱신의 설교, 심령의 부흥설교와 관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인물로서 우리는 17세기에 도탄에 빠진 영국 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설교자 John Wesley를 들 수 있다. 언제나 역사의 흐름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분위기와 운동의 등장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구체적 상황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는데, Wesley의 시대도 역시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혼란과 문란의 극치를 이루던 상황이었다. 우리의 관심을 당시의 설교와 종교계로 국한해서 보면, 그 당시는 계시를 이성으로 대치하고 자연을 찬양하는 합리주의가 신학계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성을 중시한 나머지 종교의 신적 영감을 무시하는 주지주의적 종교 생활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합리성의 추구는 교회로부터 역동적 성격을 앗아 갔고, 성직자들의 설교도 역시 Gold Smith가 지적한 것처럼 "메마르고 방법론적이며 사랑이 결핍된 열정 부재", 그래서 "회중보다 원고와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설교하느라 조는 청중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따라서 성직자들에게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령운동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화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로 빈민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대중이 교회의 목회권 밖에 방치되었다. 대부분의 영국민이 영적 무기력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교회와 설교는 이들을 회개와 구원의 길로 나오게 하는데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던 상태, 즉 영적 차원을 상실한 머리의 종교와 설교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Wesley의 일차적 관심이 교회 밖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로 모아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의 설교는 "믿음에 의한 의에서 복종(롬 10:6),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문제, 회개와 성령, 설결한 삶 등에 집중되었다.

특이한 것은 기존의 방식과 달리 Wesley가 George Whitefield(1714∼1770)의 뒤를 이어 야외를 설교무대로 삼아 대중전도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즉 Wesley의 설교는 그 내용이 영적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교회설교와 구별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택한 야외설교는 대중을 대상한 본격적인 심령부흥과 각성의 설교라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소그룹 설교와 차이가 있다.


5) 보다 협의적 의미에서 부흥설교는 미국에서 일어났던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 movement)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부흥운동은 Jonathan Edward(1703∼1758년)와 George Whitefield (1714∼1770년)로 대변되는 제1차 각성운동과(1726∼1770년), Timothy Dwight(1752∼1817년)의 지도 아래 예일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부흥운동(1790∼1835년),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후 Charles G. Finney(1792∼1875년), 천막집회의 선구자 Peter Cartwright(1785∼1872년), 그리고 Dwight Layman Moodt(1837∼1899년) 등에 의해 주도되었던 제3차 부흥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차 각성운동은 청교도 공동체로 출발한 신대륙이 반계약제(Half-Way Covenant), 이신론, 합리주의, 낭만주의, 범신론적 신비주의 등과 같은 신사조의 유포로 인해 경건을 잃어버리고, 세속적, 향락적 물결에 휩쓸려 회중의 교회 참석이 둔화되고 영적 침체현상에 빠지는 상황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J. Edward는 일곱 차례나 신대륙을 전도여행하면서 집회소, 헛간, 광야, 짐마차 등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회개와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이 시기의 설교는 에드워즈의 설교에서 보여 주듯이 주로 죄에 대한 경고와 이신득의, 구속의 은총을 강조하는 데 치중하였고, 집회의 분위기도 역시 넘치는 감정적 열정으로 가득하였다.

제2차 각성운동은 미국의 독립전쟁, 국가와 교회의 법적 분리, 그리고 편만한 사회불의라는 외적 상황과 뉴잉글랜드의 부흥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 in New England)의 영향으로 예일 대학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학교의 총장이었던 Timothy Dwight는 실질적으로 대학 내의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는데, 당시 지식층에 만연하던 회의주의, 이신론 추종, 성경권위의 부인 현상의 위험성을 폭로하면서 설교를 통해 영적, 도덕적 대각성의 필요를 역설하였다. 이로 인해 대학 내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학생의 1/3이 회심하였고, 다른 대학으로 퍼져나가는 도화선이 되었다.

한편 서부에서는 장로교 목사인 James McGready(1758∼1817년)의 인도 아래 소위 "캔터키 부흥"이라 불리우는 열정적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다른 지역의 부흥운동과 달리 며칠씩 집을 떠나 집회에 참석하며 지난 날의 악한 생활을 통회하고 몸부림치며 경련과 기괴한 발작이 회중 사이에 일어나는 등 극단적인 흥분현상이 나타나곤 하였다.

이 때의 설교 내용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타락', '중생의 필요', '구속의 능력' 등으로 특징이 나타난다. 이 시기의 감정적 열정을 통반하는 부흥회는 그 이후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특성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미국 교회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시켜 교파형 교회의 확립, 해외선교운동, 복음주의적 설교와 경건주의, 감정에 호소하는 부흥회 등 미국교회의 틀을 구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이후의 부흥운동은 C. G. Finney에 의해 활성화되었는데, 이전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이성적, 토의적 방식을 설교에 도입하였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먼저 이성적으로 부합되고 또 확신될 때 가능하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기도가 강조된 기도의 기간, 몸부림치는 열정이 없는 대신에 개인 전도열의 향상, 평신도 지도자들의 활동, 복음주의적 설교와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영적 설교와 부흥 설교를 광의적 차원까지 확대하여 이것이 부상하게 된 배경과 각 시대마다의 특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신비주의, 경건주의에서 나타난 광의적 의미의 영적 설교는 대중적 설교가 아닌 소수의 그룹만을 대상으로 행해졌으며, 열광주의적 성격보다는 주로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한 하나님 체험을 지향하는 그들의 사조에 맞게 개인의 경건(Frömmigkeit)과 영혼의 청정을 촉진하는 데 주안점이 주어졌다. 당연히 열광주의적 분위기 하에서 감정에 호소하는 형식이 아닌, 지극히 정적인 수도원적 명정의 분위기와 형제애적 따뜻함이 이들의 분위기였다.

이에 반해 Wesley와 미국의 부흥운동에서 나타난 협의적 의미의 부흥설교는 영혼구원이라는 구체적 목적을 가진 본격적 대중집회에서 행해진 설교이다. 잠자는 영혼을 일깨우고, 죄를 신랄하게 지적하며 성령충만을 기본적인 테마로하여 설교가 행해지다 보니 자연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가 될 수 밖에 없었고, 회개와 새로운 삶에의 결심, 주님에 대한 영접 등으로 집회의 분위기는 뜨거울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설교의 내용과 목표 자체가 마음을 도려야 하는 아픔을 수반하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마련된 특별집회는 새 생명과 새 차원을 자각하는 일종의 영혼의 축제일 수 밖에 없었다. 기성교회의 격식에 매인 예배와 설교에서 느낄 수 없는 축제적 넉넉함이 이 집회와 설교의 특징이다.

둘째로 부흥설교에서 다루어지는 테마는 딱딱한 교리나 지식의 축적을 목적한 교리설교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 죄의 심각성, 구원의 당위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듭난 삶, 성령충만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런 경향성은 후대에서 보이는 본격적인 부흥설교에 보다 부합되는 관찰이지만, 중세나 근세의 영적 설교도 역시 영혼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영적 설교는 이성보다는 감정을 주된 전달 통로로 삼았다. 특히 대중집회에서는 보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찬양과 기도, 악기 등이 열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도구로 동원되었다.

셋째로 부흥 설교자들은 대개가 심오한 종교적 체험을 그들 사역의 바탕에 깔고 있다. 물론 중세 신비주의 설교자인 M. Eckhart에게서는 아랍철학을 통해 전달된 신플라톤주의에 영향받았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심오한 종교적 체험에 대한 정보를 발견할 수는 없으나, 본격적인 대중 집회의 설교자들은 올더스케잇의 회심체험을 한 웨슬리, 성경을 읽는 중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 Jonathan Edwards, 2∼3년 간의 갈등 끝에 회심하여 성령세례의 체험을 하고 부흥사의 길로 나선 Charles G. Finney 등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종교적 체험을 그들 사역의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영혼사랑에 불타던 사람, 끊임없는 기도의 사람, 그리고 말씀에 대한 깊이있는 사고를 지닌 자들이었다.

넷째로 부흥설교자들의 설교는 대체로 평이하고 알아듣기 쉬운 설교였다. 중세를 풍미했던 수사학적 기교에 의지하기보다는 '될 수 있는대로 단순하게, 대중적으로, 통상적으로'(simpliciter et pueriliter et populanteret trivialiter)라는 M. Luter의 설교방법에 부합하는 설교를 주로 행했다. 주로 일상대화에서 사용하는 통상적 언어, 다양한 제스쳐, 정열적이며 애절한 호소, 그리고 간단 명료한 개요와 논리적 전개가 부흥설교자들이 보여준 설교이다. 집회에 모여든 회중의 다양성과 뚜렷한 목적을 지향하는 집회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부흥설교의 특징과 개략적인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우리는 아직 남아있는 한 가지의 문제를 이제 이 장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흥집회란 어떻게 정의될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부흥운동이나 상술한 대중집회로서의 부흥집회와는 또 다른 형태의 부흥회가 이미 한국교회에 뿌리내린지 오래이고, 이 형태가 외국의 경우와 달리 목회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쳐온 게 현실인 실정에서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로의 정체성과 그의 설교를 평가하는 데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김진환은 부흥운동을 "하나님과 역사의 만남의 역사요, 만나서 힘을 얻어 어떤 새력에도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요, 죄악을 깨치고 하나님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보면서, 포괄적으로 접근한다. 이에 반해 Charles G. Finney의 정의는 보다 구체적이다: "복음이 교회의 공식적 삶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호소라면, 부흥이란 교회 내에서의 호소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처음 사랑을 되찾게 하는 것이요... 침체된 교회를 깨우는 것이다."

이 정의들로부터 우리는 개교회의 부흥회에 대한(대중 부흥운동이 아닌) 이중적 이해를 얻게 된다. 즉 이미 믿는 자들을 다시 영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또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을 각성시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특정한 목적 하에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는 집회가 곧 부흥회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전자의 이해가 더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이는 부흥사를 불신자에게 전도한다는 의미가 강한 전도자(Evangelist)로 부르는 외국의 경우와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목회적 차원과 부흥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으로]

Ⅲ. 이 성봉 목사의 생애


이성봉 목사의 생애는 그의 사역을 중심으로 목회사역에 헌신하기 전단계, 목회자로서 헌신한 시기, 그리고 부흥사로서 활동한 시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은 단지 표면적인 연대기적 구분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실존적 고민과 종교적 체험, 그리고 각 시기를 지탱하고 연결하는 모티브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A. 제 1 기 : 소명을 위한 몸부림(1900-1924년)


이 시기는 이성봉 목사가 1900년 7월 4일 평남 강동군 간리에서 부친 이 인실과 모친 김 진실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6세에 기독교에 입문하고, 중화 경의학교를 거쳐 신천 경신 소학교를 14세에 졸업하고, 26세에 신학에 입문하기 전까지를 의미한다.

그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 아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6세에 기독교에 입문한 뒤 평양 선교리에 있는 선교리 감리교회까지 40리 길을 통교하는 등 이미 유년기부터 기독교 신앙과 접맥되어 성장하였지만, 그의 신앙은 부정적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정교육은 대단히 엄격하여, 소년 이 성봉이 부모의 명을 거역하면 종아리를 맞든지 쥐가 우글거리는 광 속에 가둘 정도였고, 이러한 교육의 엄격성은 그의 인격형성에 기본적 예절과 상식을 존중하는 규범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어머니는 이 목사가 6∼7세 될 때부터 그를 위해 기도하며 신앙의 바른 교육을 위해 힘썼는데, 비록 그가 청년기의 방황을 심하게 앓긴 했지만, 이런 유아기의 신앙 교육은 결과적으로 이 목사를 하나님께 묶어두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 이 목사가 신앙의 본질적 문제로 인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청년시기의 상당부분을 신앙에서 떠나 있었는데, 이는 환경적인 영향이 더 큰 작용을 했다. 경신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그는 깊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고, 이런 실의는 그로 하여금 지금까지 아무 생각없이 믿어온 기복적 신앙의 종말을 경험하게 하였던 것이다. 깊은 신앙적 동기가 없이 가정환경과 유아기적 낭만에 의해 시작된 소박한 신앙은 험난한 현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 천당, 내세, 지옥을 부인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저주하며 물질에 대해 그의 온 관심을 집중시키게 된 것은 이런 류의 신앙이 다다를 수 있는 자연스런 결과였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시기는 경제적인 면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 이 성봉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부정적인 시기였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 시기야말로 그의 평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이 전환을 가져오게 된 결정적인 전기는 그가 21세 되던 해에 그에게 찾아온 이름 모를 병마였다. 이 일로 그는 6달 간을 평양 기흘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 기간동안 그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비로소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다:


죽음 아래 모든 것이 다 매장을 당한다. 돈을 많이 벌어보려 하지만 백만 장자도 죽어버리니 허사요, 땅을 사고, 뫼를 사고, 밭을 사고, 고대광실같은 집을 지어도 나 죽으면 땅 한평, 수의 한 벌, 관 한 개 밖에 못 가지고 가는 것이며, 천문지리 상통하는 많은 지식을 가졌어도 나 죽을 날자 알지 못하고, 영웅호걸 미인들도 죽음 앞에서 다 항복하고 마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관조는 이 성봉 자신의 불우한 처지로부터 나온 자기한탄적 의미가 적지 않으나, 후에 그의 사역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가치를 두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이 사건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병상에서 인생무상(人生無常)만을 염세적으로 읊조린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


나는 이제 죄인임을 알았다.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상으로 지은 죄, 양심상으로 지은 죄 등등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나는 죄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육체의 고통을 통해 이 목사는 자신의 속사람을 바라보게 되었고,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자신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신앙의 자각을 바탕으로 이 목사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헌신을 다짐하게 된다 :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이제야 깨달았나이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이 몸을 주께 마치고, 이 사실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들에게 또한 나의 뒤로 오는 후배청년들에게 이것을 증거하겠나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전하겠나이다.


병을 통한 이러한 헌신의 다짐은 그후 이 목사의 생애를 바꾸는 구체적인 동기가 되었고, 동시에 이 체험은 이후의 그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설교에서 대단히 중요한 형성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죽음으로부터 고침받은 체험과 병상에서의 중생의 체험은 그의 인생을 하나님 위에 세우게 되는 동기가 된 동시에 그로 하여금 평생 동안 '하나님 제일주의'를 지향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이 되었다.


B. 제 2 기 : 목회자의 모범(1925∼1937년)


이 성봉 목사가 헌신을 결단하고 신학에 입문하게 된 것은 그가 26세가 되던 1925년 3월의 일이다. 그의 표현대로 3년간 계속된 신학수업은 그에게 '지적으로는 별게 없었으나 영적인 부흥과 말씀을 통해 신앙의 지도'를 받게 했던 생산적인 기간이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이 목사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여전히 놓여 있던 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시기였고, 이것을 해결함 받은 시기였다.

신학수업 기간 중에 그는 이미 청량리교외에서 유년 주일학교를 맡아 사역하는 한편, 방학 중이던 1927년 여름에는 경북 김천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 강사로 활동하여 큰 부흥을 가져오는 등, 이미 그때부터 교역자와 부흥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신학생 시절에는 선교사들의 횡포와 학생에 대한 열악한 대우 그리고 교수진에 대한 불만 등으로 동맹휴학 사건(1926년)이 터졌을 때, 화해자로서 그가 보여준 중립적 입장의 고수는 만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함으로 매사에 임해야 한다는 그의 성숙한 신앙과 인품을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그의 신학수업 기간 동안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졸업을 앞둔 시점에 겪은 거룩한 소명의 체험이다. 사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자신없는 상태에서 영적인 갈급을 느끼고 있던 이 목사에게 이 체험은 사역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불타는 소명감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전도생활의 좋은 준비 기간으로서의 신학교 3년 수양을 마친 뒤, 이 목사는 본격적인 목회의 길로 나서게 된다. 사실 그에게 목회는 처음으로 개척하여 부임한 수원교회(1928∼1930년), 목표교회(1930∼1936년) 그리고 신의주 교회(1936∼1937년)등에 지나지 않았고, 그 기간도 9년에 불과했으나, 그의 목회는 목회의 이상과 귀감으로 자리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목회를 통해 드러나는 특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의 목회는 철저하게 구령열에 불타는 복음 전도자의 사명으로 일관하였다. 그에게는 이 복음 사역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명 때문에 그는 온갖 조소와 멸시를 무릅쓰고 성결교회의 초대 전도 방법인 노방전도에 따라 나팔을 불며 농촌지역을 순회하였고, 매일처럼 개인기도와 가정 집회를 쉬지 않았다. 그의 관심이 영혼구원에 있었기에 당연히 그는 교인들에게 철저한 회개를 요구했고, 또 죄를 질책하는 설교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부작용으로 그의 사역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으나,동시에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풍성한 수확이 그의 목회 사역기간 동안 이어졌다.

둘째로 이 성봉 목사의 목회는 철저히 영적인 체험이 동반된 목회였다.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데, 그중 하나는 목회현장에서 이적과 기사가 나타남으로써 그의 목회에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의 자서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첫 목회지인 수원교회 시절부터 병자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들이 놓임을 받는 이적으로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 이적을 동반한 이런 현상은 그가 부흥사로 활동하던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또 다른 의미는 이 목사 자신과 관련된 것인데, 그는 목회 사역기간 중에도 여러번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수원 목회기간 중에 과로로 병상에 누운 상태에서 이루어진 영적 체험과 신유이다(1928. 8. 12.):


... 그때 하늘로부터 십자가가 나타났다. 나는 분명히 주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를 보았다. 감격하여 붙들고 애통하며 나의 모든 죄를 자복했다... 그(예수)는 나를 어루만져 주시며 천국으로 가자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한참 가다보니 수정같은 맑은 요단 강물이 흐르고 저편에서 화려하고 찬란한 천성이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찬송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정신이 회복되며 온 몸에서 식은 땀이 쭉 쏟아졌다... 아프던 내 몸이 거짓말처럼 완전히 나았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이 목사 자신의 말처럼 그후로 그의 신앙생활을 격려하여주고 소망 중에서 살게 하고 현실보다 내세를 더 그리워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동력이 되었고, 언제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그의 목회 생활과 말씀사역 그리고 목회사역에 긴장을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었다.

셋째로 이 목사의 목회는 철저히 기도로써 풀어가며 하나님께 맡기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목회였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동기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았고, 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가령 당시 다른 교단의 감독정치 하에서 자신이 개척해 견실하게 성장시켜 놓은 수원교회를 사임하고 목포로 내려간다든지, 혹은 이 목사 자신의 표현처럼 제일 재미있게 일한 신의주 교회를 총회의 명에 의해 사임하고 부흥목사로 사역해야 하는 것 등에 인간적 서운함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향과는 전혀 반대쪽인 멀리 전라도 목포로 파송받았을 때 나는 정신이 아득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막상 수원교회를 떠나자니 수년간 갖은 어려움을 다 겪어 가면서 세워놓은 아름다운 성전을 남에게 맡기고, 약하고 어려운 셋방살이 교회로 가야하니 육정으로 생각할 때 기가 막혀 안 가려고 많이 발버둥도 쳤다.

특히 목포 교회의 목회는 이 목사에게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시험을 가져다 주었다. 신비주의로 나가는 부인을 책벌한 사실에 앙심을 품은 그녀의 아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으며, 사랑하던 청년들이 이 목사의 목회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기도 하였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이 목사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나아가면 주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지, 인간의 수단방법을 써서는 안된다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성정(性情)을 인내로써 참는다는 소극적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적극적 신앙의 발로를 뜻한다. 이 목사의 목회가 오늘의 목회자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는 것은 이 목사가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의 차원에서 살려했던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넷째로 그의 목회는 여러 면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은 목회였다. 우선 그가 사역하는 곳마다 수많은 영혼구원의 결실을 보았는데, 가령 그가 개척한 수원교회가 그가 목회하는 동안 400여명의 교세를 갖춘 견실한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든지, 목포교회에서는 6년을 시무하는 동안 암태교회, 임자도 교회, 후중도 교회, 그리고 압해도 교회 등 지교회를 개척한 일, 마지막 목회지인 신의주 교회에서는 직원 50명을 포함 모두 1000여명의 교세를 갖춘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고 마천동 등지에 지교회를 개척한 것 등이 이를 잘 반증한다.

그의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부임하는 곳마다 교회의 신증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부 현대교회들이 기업적 발상에서 기존의 훌륭한 건물들을 두고도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세운다든지, 혹은 여러 여건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 신축을 기피하는 현상들과 비교해 볼 때, "죄 있는 장소, 불의한 집, 개인의 집은 좋은 집이 많은데 주님의 성전이 셋집일 수 없다"는 신앙의 발로에서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도 교회 건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그의 신앙과 생각은 오늘날 목회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겠다.



C. 제 3 기 :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1937∼1963년) - 이 성봉 목사의 부흥사역과 그 의미


이 성봉 목사의 정체성을 가장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바로 3기의 부흥목사로서 활동하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목사는 1937년에 서울 신학교에서 열린 총회에서 전국 부흥사로 임명받은 이래, 1941년에 만주 봉천 중앙교회에서 잠시 목회한 것과 일본 유학 중에 공석 중인 동경 성결교회를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동안 부흥사로 헌신한 분이다.

성공적인 목회자로서 착실히 목회하던 그로 하여금 부흥사로서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 사역만을 전담케 한 것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당시의 상명하달(上命下達) 식 인사체제에 근거한 총회의 지명(指名)에서 기인하지만, 동시에 이런 결정을 이끌어 내기까지에는 그 당시의 교계 분위기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 목사가 총회에 의해 전국 부흥사로 임명받던 당시의 한국 교계는 일본의 '황국 신민화 정책'의 핵을 이루던 '신사참배'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했던 시기였다. 일본의 파상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순교를 각오한 저항을 계속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박해의 강도 앞에서 각 교단은 하나둘 신앙의 지조를 저버리게 되었고, 3.1운동 후 근근히 이어오던 부흥의 불길도 역시 점차 시들해지는 위기의 시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신앙의 정체성과 교회의 성장이라는 두 가지가 모두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 바로 그것 이었다.

교회와 신앙의 위기는 비단 신사참배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의 우리 민족은 미증유(未曾有)의 심리적, 사상적 좌절 속으로 곤두박질하고 있었고, 정치적 환멸과 배금주의(拜金主義)의 만연, 사회-도덕적 퇴폐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성결교회는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이라는, 교회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적극적인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즉 헌금 액수의 격감, 교세의 감소, 교회당의 폐쇄라는 한국교회 일반의 심각한 위기를 맞은 성결교회는 특유의 직접 전도방식인 노방전도와 부흥회, 사경회를 통하여 성경에 대한 열의, 개인전도의 사명감, 성령충만한 삶을 강조하였고, 급변하는 사회정세 속에서 성서로 돌아감을 통한 신앙적 대처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거교단적 차원의 전도운동과 전도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어 가면서 전도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타오르게 되었다. 성결교회 제 1회 연회록의 '서부지방 교세 보고'는 당시의 전도 열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본 지방 각 교회는 특별히 기도의 불이 붓는 중 각 교회마다 기도회를 힘쓰는 바... 신의주 교회에서는 오개월 간 기도회를 계속하야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신의주 동교회에서는 1년 동안 계속하야 기도회를 회집하야 많은 은혜를 받는 중이오, 각 교회에서 개인전도 노방전도를 힘쓰는데, 신의주 서교회에서는 신결신자가 180명이요, 동교회에서는 900여명에 달하야 신천교회에서는 30여리 간에 있는 문회에 신개척하고...


이러한 총력전도의 분위기는 이 명직 목사의 "축복받은 신년의 결의"라는 글에서도 확인된다:


전도는 교회의 사명이다... 전일에는 우리가 노방전도도 열심히 하였고 옥내전도도 열심하였고 개인 전도도 열심하였다. 그러나 금일에 이르러서는 시국문제 등 그럭저럭하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었고, 전투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게재에 우리 회합에서 일치전도가 결의되었다. 어찌 희소식이 아니리요. 이러한 소식은 그야말로 고목에 봄이 돌아오는 것과 같은 감이 있다...


이 성봉 목사가 전국 부흥사로 임명받은 것은 이와 같은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적 맥락은 이 목사 개인의 수락 여부와는 사실 상관이 없는 전 교회적인 대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총회의 결정은 신의주 교회의 성전을 봉헌한 지 3일 밖에 지나지 않은 이 목사에게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 여러 교우들과 큰 일을 겪고 떠나는 약한 마음, 뒤를 돌아봄이 적지 아니할 수 없었으리라. 더욱이 이 목사 자신의 말대로 가장 크게 부흥되고 목회의 재미를 한껏 누리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비록 총회의 결정이 부흥사로서의 이 성봉 목사의 역량과 능력을 인정하였다는 증거이긴 해도, 그의 아쉬움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의 참된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상황이 가져다 주는 여러 이익을 저울질하기 쉬운 상황에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띠끌같은 미말의 자신"이라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의 모습, 그리고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에 의지하여 부흥사 지명을 "만세 전에 예정하신 주님의 계획"으로 믿고 흔쾌히 새로운 사명의 길로 나서는 모습, 여기서 우리는 철저히 사업의 논리와 사업가의 계산으로 오염된 현대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한 진정한 광야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흥미있는 것은, 이미 그의 생애에서 보았듯이, 생의 진로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영적 체험을 했던 것처럼 부흥사로 임명되기 전에도 이 목사는 또 한번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목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37년(38세 때) 총회가 서울 신학교에서 있었는데, 그때 나는 단체 부흥사의 사명을 받게 되었다. 그 사명 받기 전에 나는 이상한 꿈이라 할까 비몽사몽같은 일이 한번 있었다. 총회 도중에 나는 너무 지쳐서(철야기도와 회의 때문에) 신학교 서쪽 사층 어느 조그마한 방에 들어가 잠깐 누웠는데, 김 익두 목사님(장로교 부흥목사)이 오시더니 나를 위하여 안수기도를 한다고 나의 오른편 옆구리에 손을 대고 어루만지며 기도하셨다. 뜨끈뜨끈한 손이 닿자마자 불의 폭발이 일어나는데, 너무 뜨겁고 놀라서 화다닥 침대에서 뛰어 올랐다. 떨어지니 꿈이었다. 어찌나 혼이 났는지 온 전신에 땀이 흐르나 심령은 매우 상쾌하였다. 불세례를 체험한 것이었다.


이미 앞에서 부흥운동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들의 헌신이 바로 이러한 영적 체험들을 모토로 하고 있음을 보았고, 또 부흥사역이 일차적으로 인간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영적 차원을 다룬다고 보았을 때, 이 목사의 영적 체험은 그의 부흥사역의 신적 동기와 전제로서 당연히 요청되는 것이며, 이러한 영적 체험 후에 부흥사역에 일생을 헌신하게 된다는 부흥사역자들 일반의 공통점은 이 사역 자체가 인간적 노력이나 동기로는 감당할 수 없고, 또 감당해서도 안 되는 영적 차원과 관련된 일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전국 부흥사로의 임명을 계기로 이 목사는 회갑까지 1천 교회 부흥 집회를 목표로 본격적인 부흥사의 사역길을 들어선다. 교단 기관지인 활천이 매달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사역은 만주, 용정, 평양, 이천, 재령, 인천, 홍산, 전의, 군산, 웅기 등 실로 도시와 농촌을 망라한 전국을 무대로 한 것이었다. 이 목사 자신이 술회하는 것처럼 그의 부흥사역은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같이 하셔서 큰 불이 일어나고 예수의 향기가 진동하는 대단히 성공적인 사역이었고, 동시에 교파를 초월한 사역이었다. 그 한 예로서 동북만 용정집회에서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세 교파 신자를 놓고 집회를 인도하였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강단에서 설교를 못하고 부인반 출입구에다 책상을 놓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 가득히 서 있는 사람들을 번갈아 보면서 설교"할 정도였다. 이 집회에 모여든 2천명의 군중들 가운데 "회개하고 중생을 경험한 자가 부지기수이고, 새로 믿는 결신자가 130여명이었으며," 집회에서 바쳐진 헌금으로 교회를 신축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 목사의 성공적인 부흥사역은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교파를 초월한 부흥사역에 대한 제재와 교파를 초월한 부흥사역을 사명으로 확신한 이 목사의 소신이 빚어낸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악마의 시기와 질투가 나를 넘어뜨리려 했다. 왜냐하면 내가 부흥목사로 정오의 햇빛처럼 빛나고 점점 올라가니 우리 교파뿐 아니라 장로교 감리교에서도 대환영들이다. 그래서 타교파에도 만히 나가게 되니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성결교 부흥사니 성결교만 집회하고 다른 교파에는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제지하니 내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나는 본시 장로교에서 구원받고 한 십년 있다가 또한 감리교 구역에서 한 십년 있었다. 그리고 25세에 성결교회로 왔던 것이다. 본래 나는 교파의 구별없이 봉사하는 것이 나의 사명인 줄 알아서 이에 불응했다.


결국 교단에서는 1939년 11월에 김 영균 목사를 북부지방 순회 부흥사로 임명하고, 이 목사는 남한 지역에서 부흥사역을 수행케 하는, 사역 지역의 이분화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 목사는 이 결정에 불복하고 결국 전국 부흥사 임명 1년만에 휴직청원을 제출하게 된다. 이 목사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이라는 신앙적 표현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이 사건 배후에 그릇된 교단정치와 일부 교역자들의 인간적 시기와 질투가 스며들어 있음을 짐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직청원 후에 이 성봉 목사는 신학을 연구할 목적으로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이 목사는 대략 2년 정도 일본에 머물렀는데, 처음 의도와는 달리 신학교에 입학하고도 그는 엄쳐나는 구령열로 인해 동경, 신도, 대판, 관도, 풍교 등 각 곳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책상 앞에 앉아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깊이 빠져들기에는 죽어가는 영혼들의 촌각을 다투는 신음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인, 한국인 가릴 것 없이 부흥회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한편, 동경성결교회를 임시로 맡아 돌보고 또 방 수원 목사의 주선으로 '인생 허사가', '하나님은 사랑이라' 등의 독창을 레코드에 취입하여 큰 호응을 얻는 등, 그의 일본사역은 알찬 수확을 거둔 시간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 목사가 1941년에 임명받은 사역지는 이 목사 자신이 스스로 청원했던 만주 지역의 봉천 중앙교회였다. 처음 부임하여 성전 공사 중 중단된 채 방치된 성전을 6개월만에 완축하고, 새벽 기도회에 100여명이 모이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주도한 이 목사는 그러나 한 지교회에 머물러 목회의 여유를 만족하기에는 구령을 위해 주어진 달란트가 너무 큰 인물이었다. 중앙교회를 김 홍순 목사에게 맡기고 사랑하는 가족들마저 고향으로 보낸 후에 이 목사는 홀로 만주에 남아 5년여 동안 복음전파에 주력하는 철저한 전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만일 그가 불타는 영혼사랑 이외의 그 무엇에 관심을 두었다면, 이러한 고생을 자초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죽은 심령이 살아나고 병든 자가 구원받으며 만주에 와서 처음 믿음을 상실한 자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는 것을 보는 그 감격이 그로 하여금 고독한 전도자의 길을 가게 했던 것이다.

이 목사의 활동 영역은 비단 만주 일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이 목사를 초청하려는 요청이 쇄도함에 따라서 평양 지역 및 황해도 등지에서 교파를 초월하여 수십 차례의 부흥집회를 인도하였고, 그때마다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집회가 긍정적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특별히 십자가를 피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수락한 황해도 황주와 사리원 집회에서 이 목사는 그가 전한 설교 내용으로 인해 경찰서에 검속되고 심한 곤욕을 치루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굴욕이나 모욕도 복음을 위해서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풀무불같은 시련일지라고 복음을 향한 이 성봉 목사의 굳은 신앙을 녹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조국의 수많은 불신 영혼을 버려두고 타의적 상황에 의해 만주 일대를 떠돌 수 밖에 없었던 이 성봉 목사의 애환은 민족의 해방과 함께 종결되었다. 하지만 사상적으로 혼미를 거듭하던 당시의 상황은 이 목사의 자유로운 복음의 날개짓을 제한하는 또 다른 장애물에 다름 아니었다. 해방 후에 7개월 가량 북한에 머무는 동안에 이 목사는 북한 각지역을 순회하며 교회 재건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로 북한과 만주에 산재해 있던 교회들이 조속히 재건되었지만, 점차 조여드는 공산세력의 포위망으로 인해 결국 그는 1946년 3월 월남하게 된다.

이런 피난의 와중에도 그는 기회를 얻는대로 부흥성회를 인도하는 한편, 서울에 도착해서는 서울 신학교 이사장을 맡는 등 교단의 재건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목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교단의 행정적, 정책적인 영역만은 아니었다. 더욱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당시의 무질서의 극치를 달리던 사회와 교회, 가치관의 혼란, 사상적 동요, 물질적 궁핍 속에서 신음하던 백성과 성도들을 어떻게 하든 복음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각이 마련하는 이 목사의 진로는 분명할 수 밖에 없었다. "좌우간 1년에 최고 기록은 82군데의 부흥회를 인도"한 것이리만큼 복음을 위한 충정은 하루도 쉴틈이 없는 강행군 그 자체였다. 그의 부흥사 사역은 6?25 한국전쟁이라는 절대절명의 위기로도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이었다. 목포피난 시절에 빨치산들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집회가 도저히 불가능한 피난의 와중에서도 전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마치 일상의 호흡처럼 계속했던 것이다.

특별히 1954년 5월 25일-1955년 4월 27일에 걸쳐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교단 희년기념 전도단을 이끌고 1년간 마치 적군과 전투하는 자세로 전국 70여 지역을 돌며 성회를 인도한 것과, 그 이후 1956년 3월 18일까지 1천 교회 지교회 설립을 위한 전국교회 순회 집회에서 그의 부흥사 사역은 절정을 구가하게 된다. 특공대라는 명칭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때의 전도사역은 목숨을 건 영적 전쟁 그 자체였다. 따라서 영적으로 무찔러야 할 적군이 있는 곳이면 그 어느 곳이라도 이 목사의 전투목표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이 기간 중에 그는 농촌과 산촌, 도서 등지에서 부흥사를 청할 형편이 못 되는 곳, 지역으로는 후방보다 교세가 극히 미진했던 강원도 지역을 집중적인 공략의 대상지로 정하고 활동했는데, 그의 부흥사역은 이 목사 자신의 표현처럼 전쟁 그 자체였다:


6월 11일-14일 횡성 성결군 대장 이 만선 목사의 고군분투하는 소식듣고 급히 돌격하니, 교회당과 목사관 모두 빼앗기고 무너진 공회당 지하실에서 장병들이 포위를 당하여 악전고투로 비절 참절이었다. 특공대 숙소는 신흥여관이요, 전투장은 건난장이라. 4일간의 공방전에 고지를 탈환하여 엉터리 신축 예배당에 가마니 깔고 승전예배드리니 부상 장병 50여명, 사기충천하여 진지사수에 진력했다.


복음을 위한 이러한 강행군은 곧 희년 기간의 성회인도(1957년 5월 15일-1957년 12월 29일), 그리고 제주도 하기 전도와 미국 순회 전도(1959년 4월 2일-12월 8일)로 이어진다. 모든 여정이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이라는 공통된 목표에 맞추어 있지만, 특히 희년 기간에는 대도시 교회 위주의 집회가 특색을 이루었고, 제주도에서는 교파를 초월한 집회, 그리고 미국집회의 경우는 교파와 인종을 초월한 집회, 그리고 미국집회의 경우는 교파와 인종을 초월한 국제적인 집회였다. 특히 미국집회의 경우는 국내에 비해 현실적 긴박감이나 집회의 당위성, 그리고 쉴틈없이 이어지는 집회일정 등에서 한결 여유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또 도미의 1차 목표가 복음주의 협회(NAE :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대표로 회의에 참가하는데 있었기에, 모처럼의 여유있는 휴식을 가질수 도 있는 성격이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의 의미를 복음전파에서 찾는 이 목사에게는 강단에 서는 것 자체가 곧 휴식이요 안식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 이 목사는 교단 분열의 혼란 속에서 교단합동을 위한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게 된다. 그는 1년 5개월 간(1961년 9월 23일-1963년 2월 17일) 1일 1교회 순회집회를 계획하여 모두 480교회의 집회를 인도하면서 교회의 하나됨을 역설하였다. 이 연속집회를 마지막으로 25년에 걸친 이 성봉 목사의 위대한 부흥사역은 마무리되었다.

그의 부흥사로서의 사역은 비단 성결교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갖힌 협의(狹義)의 사역이 아니라 한국과 세계를 무대로 한 광의(廣義)의 사역이었고, 동시에 부흥사역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부흥사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표 그 자체이다.

우리는 부흥사 이 성봉 목사의 부흥사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귀중한 덕목으로 뽑아낼 수 있다. 우선 이 성봉 목사가 부흥사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물질, 명예, 이성의 유혹을 초월한 완벽한 생애를 살았다는 데에 우리의 관심이 모아지게 된다. 그가 당시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신의주 교회를 건축하고 수많은 성도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소위 성공적인 목회자였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임지를 사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일한 관심이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을 성직에 있으면서도 일체의 교단 내의 정치적 직위와 담을 쌓고 살았던 것도 역시 그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교단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한 그의 태도로 인해 이 목사가 교단정치의 중앙무대에서 소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가령 이 목사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직 후에 초교파적인 부흥사역을 감당하다가 이사회로부터 교단 잔류와 탈퇴 중에 택일을 강요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 성격이 짙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신실함을 최대의 가치로 알고 인간적인 융통성이나 정치적 술수를 수치로 여겼던 그에게 이러한 불이익은 오히려 영광의 면류관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런 저런 감투에 혈안이 된 일부 부흥사들과 목사들의 자기 콤플렉스적 행동들과 비교해 볼 때, 이성봉 목사가 주는 교훈은 실로 지대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목사의 성장과정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진 경우에 대개는 물질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이 목사는 이 문제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흔적을 남기었다. 그의 셋째 여식인 이의숙 권사의 증언은 이 목사의 물질에 관한 생전의 태도를 잘 웅변해 준다:


목사님은 항상 가방 그득히 돈을 가지고 계셨지요. 그러나 그 돈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것이기에 약한 교회, 딱한 목사님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가사에는 인색하리만치 사용치 않아, 우리 가정은 항상 가난에 쪼들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도 이성봉 목사님을 아버지라고 느껴보지 못하고 항상 근엄하신 하나님의 종 목사님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성봉 목사님은 우리 자손들에게 아무 재산도 남겨주지 않고 가셨지만, 오직 천국 시민권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어 그것으로 만족하고 이렇게 감사하며 부유하게 살아간답니다.


오늘날 일세를 풍미하던 부흥사와 목회자들이 물질과 이성, 명예의 덫에 걸려 중도에 쓰러지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를 생각해볼 때, 그 누구보다도 이 모든 유혹의 파고가 드세게 몰아닥쳤을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로부터 초연했던 이 성봉 목사야말로 부흥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적 자질에서 완벽한 인물이었다 할 수 있다.


둘째로 이러한 고매한 인격을 바탕으로 한 부흥사로서의 그의 사역은,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라는 그의 평생 슬로건이 보여 주듯이, 인간적 정리(情理)를 넘어선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종말론적 사역이었다. 그의 사역에는 일체의 중간지대와 인간적 타협이 배제되었다. 부흥성회를 인도하던 중에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한 이 목사의 태도는 그의 철저성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전의 어머니를 뵈오러 가자니 불일 듯 일어나는 집회를 내버리고 굶주리고 목말라 허덕이는 양떼를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아니 가자니 불효막심하고 어떻게 할까? 그러나 전쟁에 나간 사람이 부무병들었다고 돌아갈수 있는가?... 나는 영전에 나선 그리스도 정병이요, 복음의 결사대로서 전투가 한창 치열할 때 사사로운 일에 매일 수 없어 그저 어머니를 주께 맡기고 기도하며 그냥 집회를 인도했다.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적 고뇌가 왜 없었겠는가마는 이 목사는 만유의 주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그 모든 인간적 정리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이 목사의 철저성은 1년에 최고 82군데의 성회를 인도한 수치에서도 볼 수 있거니와, 휴식기간 없이 때때로 하루 5-6회의 집회를 인도하는가 하면, 병들어 들것에 실려다니면서까지 부흥회를 인도한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가 활동할 당시는 생활수준, 교통 등 제반 여건이 극도로 어렵던 때였다.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 목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달리는 버스를 못타고 트럭 신세를 졌습니다. 장마통에 지게로 전도기구를 짊어지고 걷기도 했습니다. 고장난 자동차를 떠밀고 대관령에서 비를 흠뻑 맞아가며 넘기도 했습니다. 새벽차를 타고 종일 차속에서 시달려 정신을 못차리고 허덕일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밤낮 침식을 잊고 하루에 천여리를 차 속에서 산 때도 드문드문 있는 일이었습니다.


... 어떤 수복지대를 갔더니 거기는 그릇이 없어 군인철모에다가 세숫물을 주었다. 거기에 세수하고 보니 그것으로 소여물을 주었다. 또 다시 보니 돼지 먹이를 주는 것이었다. 철모 하나를 가지고 내가 소, 돼지와 나눠썼다. 그러다 어떤 때는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어떤 때는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고, 비오는 새벽에 수십리씩 걸어 다니니...


그의 사역이 지닌 초인적 성격은 휴식없이 지속된 그의 임마누엘 특공대 시절의 집회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목사의 이러한 철저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가 임마누엘 특공대로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글을 통해 우리는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1. 성지임을 믿음으로 그렇다. 주님은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 또한 나뿐아니라 주의 종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2. 시대가 너무 자유주의로 흘러 교회조차 법적질서가 업고 혼란 무질서하여 이단과 속화를 방지하기 어려우므로 이제는 내부 결속이 시급히 요청됨으로 그렇다. 3. 내가 나를 쳐 복종시키지 않으면 타인에게 복음전한 후에 내가 버림 받을까 두려워서 그렇다. 4. 타인을 위하여 대를 구하고(대교회는 내가 안가도 갈 사람이 많다.) 자기를 위하여는 소를 구하는 뜻에서 그렇다. 5. 약소 교회를 동정하며 고루고루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그렇다. 6. 새시대 남북 통일을 위한 전도훈련과 작전 계획이다. 7. 환영하는 헬라로 가지 않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에서 밀알같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은 주님 자취를 조금이라도 밟아보려는 심정에서 된 것이다.


결국 구체적 소명에의 확신과 그에 따른 소명자의 자세 그리고 균등한 교회의 발전과 거시적 통일 지향의 청사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사랑이라는 분명한 신념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의 사역이 초인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맥락에서 그의 주된 사역지가 부유한 여건에 융숭한 환대가 보장된 도시교회, 대교회가 아닌 "사회에서 가정에서 동리에서 버림받고 병으로 몸이 썩고 문드러지는 비참한 지경의 나환자들"이나 부흥사를 초청할 여건이 되지 않는 농촌 산촌 도서벽지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세 번째로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사역이 맺은 영적, 교회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성과이다. 그의 부흥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을 바꾸어 놓았다. 송 헌빈, 차 몽구, 이 진우, 김 정기, 유 을회 등이 그의 집회를 통하여 교역자로 헌신하게 되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교회건축이 중단된 교회가 이 목사의 집회를 계기로 건축을 마무리했는가하면, 성전을 새롭게 신축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흥미있는 사실은 현대 부흥회 중에서 인위적인 목표를 설정해 놓고 교회건축을 위한 반강제적 헌금 작정의 기회로 부흥집회를 삼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반해, 이 목사의 부흥성회는 철저한 죄의 회개에 기초한 자발적인 헌금에 의한 문제 해결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많은 경우에 교회의 영적 활력을 증진시키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며 교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로 마련된 부흥성회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집회 후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것이 현대교회 부흥집회의 한 현상인데 반해, 그가 인도한 집회는 그러한 후유증과는 무관한 뚜렷한 영적, 가시적 성과를 남긴 성회로 집회의 일반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은 이성봉 목사의 부흥성회가 수많은 결신자를 낳았다는 점이다. 오늘 날의 집회가 새신자 획득의 기회보다는 '교회 내적 차원'의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원론적 의미에서 부흥성회는 회개를 통한 영적 각성과 재무장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변화된 삶을 문제삼는 기존 성도들을 위한 영적 잔치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그리고 현대교회는 사회 분위기와 사고의 변화로 인하여 전도집회와 대별되는 원론적 부흥회, 즉 목회적 성격에 무게가 실린 집회로서 부흥회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목사가 활동하던 그 당시에는 교회에서의 부흥집회 자체가 전 부락과 마을 포괄하는 하나의 축제였다. 이 시기는 문명의 이기가 침투하지 못했던 시기, 따라서 볼거리와 들을거리에서 언제나 호기심이 발동할 여건이 충만했던 시기, 비록 오늘 날에 비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타성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오염되지 않은 심성이 살아있었기에 복음의 침투가능성이 오히려 긍정적이었던 시기, 사회, 정치, 경제적 혼란과 궁핍과 정신적 공백과 공황으로 인해 그 어떤 정신적 지주를 기대하던 바로 그런 시기였다. 이 목사 자신의 역량이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상황적 배경이 오늘과 다른 독톡한 부흥성회의 성격과 열매를 가능케 했던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고 쉽게 짐작된다. 부흥회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였고, 깨어졌던 감정이 복음 안에서 치유되었으며, 따라서 교회도 양적, 질적인 면에서 상승된 변화를 구가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결과가 단지 교회 내의 변화로만 자리잡은 것이 아니고 사회를 포괄하는 사회적 차원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무속이 생활과 생각을 지배하던 그 자리에 복음이 대치하게 되었고, 공허가 지배하던 자리에 복음으로 인한 삶의 희망이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부흥성회를 통해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한 마을에 교회가 선 의미는, 비록 모든 대도시까지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 해당 교회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그 마을과 촌락의 정체성(正體性)의 변화라는 차원에까지 접맥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목사의 부흥집회 방식은 주로 설교를 중심한 밤 집회, 천로역정과 요나서 및 명심도 강화 위주의 낮집회 그리고 기도중심의 새벽집회로 진행되었다. 집회는 일주일 간 계속된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대개는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2-3일 정도로 진행되었다. 부흥회 기간 중에 대부분의 참석자가 귀가하지 않은 채 교회에서 기거하면서 철야기도에 열심이었고, 특히 새벽기도회를 통해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다. 비록 그는 방언이나 입신, 예언 등 소위 오늘 날의 부흥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사'를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비주의적 은사로 야기될 수 있는 신앙의 신비주의화, 신앙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회에는 언제나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동반되었다.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맹렬히 타올랐던 집회, 회개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집회, 문제가 해결되어 기쁨과 희망, 평강의 강이 넘쳐나는 집회, 삶의 변화가 가시적으로 증거되는 집회, 심령을 쪼개는 능력의 말씀과 불치의 환자들이 고침받는 신유가 동반된 집회! 이것이 부흥사역의 거장 이 성봉 목사가 이끈 부흥회의 특징이었다.


[처음으로]

 

Ⅳ. 이 성봉 목사의 신학 경향성


목회자에게서 그가 가진 신앙과 신학은 그의 목회 방향을 결정하고 지탱해 주며 근거를 제공해 주는 주축인 동시에 말씀 선포에서 목회자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일반성과 전체성으로부터 구분하는 핵심적 토대이다. 따라서 한 설교자의 설교를 분석할 때, 이 요소는 설교자와 그 회중이 처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전제요소이다.

학벌을 우선적인 판단기준으로 여기는 오늘 날의 시각으로 보면, 서울신학교에서의 3년 간의 신학수업, 그것도 학문적 깊이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이 발발했던 '성경공부식' 학업이 공식적인 신학수업의 전부인 이 목사의 '신학'은 주목의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위 학문적 신학에 정통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이 이루지 못하는 심령의 갱신과 중생의 역사를 이 목사는 복음을 외칠 때마다 '사건'으로 만들어냈고, 바로 그 사건의 생성은 신학자들이 경시하는 그 '소박한' 신학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이 목사는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신학자라기보다는 부흥집회 사역을 사명으로 알고 헌신한 부흥사요 목사이다. 당연히 신학이라는 이름 하에 기대하기 쉬운 본격적인 신학서적을 그는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신학 경향성을 알기 위해 우리는 그가 남긴 설교와 자서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학성격이 한국교회의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보수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는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보수적, 성서중심적, 복음주의적 청교도 신앙, 그리고 협의적 의미에서 이 목사가 속한 성결교회의 신앙과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 목사가 신학 각론의 전개방식에서 어떤 형이상학적인 새로운 개념의 논리적 전개보다는 해당 주제와 연결되는 성구의 문자적 해석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목사가 지닌 성서관과 성서중심적 사고야말로 그의 신학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틀이다.

이 목사에게 성경이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유일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권위의 말씀"으로서 "사람의 진상을 알리는 거울이요, 시대와 사회상을 잘 알려 주는 망원경이요, 우리 생명을 밝혀주는 현미경"이다. 이 성경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며(행 2:37; 히 4:12), 중생케 하고(벧전 1:23) 신앙을 낳게 하며(롬 10:17) 성결케 하고(요 17:17; 엡 5:26) 굳게 서게하는 능력(행 20:32; 벧후 1:5-7)이 있다.

이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이 목사의 신관은 "거짓 스승을 삼가라"는 그의 설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신관에 대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영존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믿고 가르치는 것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신을 믿고 동정녀탄생과 그의 무죄하신 생활, 그의 이적, 그가 흘리신 피를 통하여 성취하신 대속적 속죄의 죽음과 그의 육체의 부활과 승천하여 성부의 우편에 계심과 권세와 영광중에 친히 재림하실 것을 독실히 믿고 전하는 것이요, 성령에 관하여, 멸망받을 죄인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중생됨과 믿음으로 칭의됨이 절대 필요함을 이를 체험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시오, 사랑의 주인이요, 사랑의 자본주"로서 하나님 없이 사랑이 없고 또 사랑없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외아들까지 주시는 절대적이고 무보수이며 영원불변하시고 높고 길고 깊고 넓은 사랑이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이 목사는 우주만물과 인생이 모두 하나님의 지으신 하나님의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멸망치 않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 때문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부흥의 비결, 57). 따라서 사랑이신 이 하나님을 믿는 이 목사의 사역의 초점도 역시 사랑이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고,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서로 사랑하도록 권고하는 데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비해 인간과 인간들이 사는 이 세계는 어떠한가? 엄밀한 의미에서 바로 이 세계관과 인간관이 이 성봉 목사의 신학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고 동시에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보는 이 세계는 "아침에는 웃음이 왔으나 저녁에는 슬픔이 오고, 밤중에는 평안히 자고 일어났으나 새벽에 무슨 고통이 올지 알수 없는 세상"이다. "환난 고통으로 버티어 놓은 거 같은" 세상, 환란 고통을 빼놓으면 무너질 것 같은 세상, 뒷집에는 한숨이요, 옆집에는 눈물이요, 곁집에는 슬픔으로 가득찬 세상! 이것이 이 목사의 눈에 비친 세상이다.

이런 그의 세계인식은 물론 우여곡절이 극심했던 그 당시의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이 시대는 세계적으로 환난이요, 국가사회적으로 환난이며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이요, 종교적, 정신적, 사상적으로 심한 혼란 중에 있으니 앞으로 올 큰 환난의 시초인가 보다. 큰 비가 쏟아지려고 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감이 있다"는 언급은 당시의 혼란한 상황이 이 목사의 세계인식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웅변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의 세계관이 단지 이러한 외형적 상황에 의해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단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 세계는 동시에 이분법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속성을 가졌다. 즉 세상은 장차 두 가지로 갈리는데, 하나님을 잊어 버리기까지 자기만 사랑하다가 망하는 세상과 자기를 잊어버리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여 축복을 받는 세상"(사랑의 강단, p.13)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분적 분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종말적 사건에서 이루어지며, 오늘 날의 외적 상황의 혼란은 바로 예수 재림의 징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축복을 받는 세상"이란 것이 이 목사에게서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소위 유토피아적 지상천국, 혹은 신앙의 철저성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물질적 복락이라는 기복적 결과나 차안적인 행복이 아니라 종국적으로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누리게 될 피안적인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됨의 참 가치를 실현하게 하며 범사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금생의 의미도 지니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의 척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그리고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맞물려 있다. 그의 설교에서 철처한 회개와 예수에 대한 신앙, 그리고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것이 금세에서 생의 의미를 이루고 내세의 영원한 세계를 상속받기 위한 절대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즉 이 목사에게서 모든 세계와 인간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구도 안에 갇혀 있는 한시적 존재들이며, 따라서 주의 재림이라는 것이 그의 신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해 이 목사가 갖고 있는 인간관은 어떠한가? 이 목사에 의하면 인간은 철저히 '순간적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북망산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존재로서, 그 인생의 흐름이란 것은 "빨리 달리는 기차가 이 터널에서 나와서 어언간 저편 터널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천국, 94). 이 목사의 인간이해는 특히 그가 찬송가곡에 맞춰 작시한 노래가사에 잘 담겨있다:


세상 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 옥답도 우리 한번 죽어지면 일장의 춘몽

꿈결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살까 일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고난풍과 일장 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인삼 녹용 좋다해도 늙는 길 못 막고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데 허사라

인생한번 죽는 길을 감히 피할소냐

분명하다 이 큰사실 너도나도 다 망한다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같는 세월은 늘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는 너 기다린다.


이 목사가 인생을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가 21세에 심각한 중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부터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제 삼자가 객관적으로 생갈할 때는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겠지만, 참말로 그 죽음이 내게 닥쳐 보니 그처럼 무섭고 그처럼 잔인하고 그처럼 허무할 수가 있을까?"라는 그의 독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병상에서 심각하게 느끼게 된 인생의 허무는 그 후로 가장 처참하고 어려운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확고해지게 된다. 사실 위의 내용은 그 문자적인 의미로 보아 그가 인생을 허무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러한 허무주의적 인생관을 이 목사의 복음과 관련지어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목사의 인생관은 인생 자체가 전적으로 무가치하다는 허무주의의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복음을 고난받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사회복음적 성격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이 목사가 보는 인생의 가치와 방향이라는 측면에 있고, 그 인생의 가치 유무의 판단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 있다. 즉 그가 병상에서 처음 인생문제를 심각하게 깨달았을 때, 그에게 예수는 의미가 없는 분이었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하는 인생의 허무는 예수라는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에 한정되며, 시간이라는 한계를 초월하는 영원한 진리와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하고 인간들이 만든 가치와 물질적 행복 안에 스스로 갇히게 된 경우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목사가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제한된 가치에 인생을 낭비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반영이며, 눈에 보이는 일차원적인 육의 삶에 대한 역설적 경고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적 세계와 천국세계에 눈뜬 성도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서 신앙이라는 토대 위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되, 그 최상의 가치는 언제나 하나님께 두어야 하고, 그렇게 사는 내용있는 삶 자체가 동시에 주의 재림이라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능동적 작업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서 최대관심은 "어떻게 잘 사는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어떻게 잘 죽느냐?" 하는 데 있고, 이 목표를 위해 인생의 내용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인생관은 '인생 사시절'이라는 그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이팔청춘 소년들아 희망의 양춘이 왔구나

좋은 시절 허송말고 조물주를 기억해

네 일생을 주께 바쳐 향기롭게 살아라

생명새벽 어릴때가 살과 같이 지난다.


혈기방장 장년들아 근로의 하절이 왔구나

땀흘리며 애를 쓰는 그대 사업 어떤가

예수없는 그 사업은 성공같은 실패라

예수위한 수고밖에 영원한 것 없구나


4,50의 중년들아 수호가의 추절이 왔구나

알곡이냐 죽정이냐 심판날이 가깝다

선한 행실 천국복락 악한 행실 지옥은

금생내세 따라오는 원일원칙이로다


백발노인 부노들아 엄동의 설한이 왔구나

일생향략 좋다해도 바람잡이 뿐이요

험한 세월 고난 풍파 일장춘몽이로다

예수 생명 소유한 자 영원무궁 살리라.


이 목사의 인간이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요소는 인간을 철저히 죄로 물든 죄인으로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 세계가 가진 모든 문제는 바로 이 죄인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그들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며, 이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 문제의 해결과 개개인의 구원만이 인간과 세계가 지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국교회의 전통적 구원관과 일치하는 것이다. 즉 모든 구조적인 사회의 죄나 모순까지도 사회복음이나 진보주의 신학 진영에서 주장하는 왜곡된 구조의 정치적 조정을 통한 해결방식을 이 목사는 거부하면서, 결국 그 모든 구조조정의 실무자요 결정자일 수 밖에 없는 인간 그 개인의 교화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메시지가 예수중심의 가치와 엄격한 신앙실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그의 관심이 인간 그 자체의 변화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이성봉 목사의 신론, 세계관, 인간론이나,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가감없이 받아 들이는 동시에 축자영감적 입장에 선 성서관, '하나님이 계신 궁전, 사랑의 뜨거운 가정, 진리를 배우는 학교, 안식을 주는 평안의 방, 작은 천국' 등으로 해석하는 그의 교회관은 내용상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신앙개조와 일치한다. 이것은 그가 성결교회의 목사라고 하는 지극히 외면적 이유 외에도 그의 기본적인 입장이 '순복음'을 전하고 성서적 신앙을 고수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신앙과 신학이야말로 "영계의 계통에 속한 순복음 신본 신앙전통"이라 주장하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십자가의 구속도 믿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를 그대로 믿지 않고, 그저 예수를 한 선생으로 모범적 인물로만 모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의협심에서 정의를 위한 자기 개인의 죽음"으로 주장하는 자들을 "이도(異道)의 당파", "육에 속한 인본주의자"로 정의한다.

이 목사의 신앙노선이 그가 속한 교단의 신학방향과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목사에게서 소위 신유의 교리와 관련된 독특한 입장을 발견하게 된다. 성결교회의 신유해석은 기도를 통한 병고침을 믿으며 동시에 의약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평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목사의 신유관이 어떠한가는 다음의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기 때문에 오늘도 그 권능, 그 사랑으로 치료하시는 여호와시라. 그래서 나는 신유의 신앙으로 30년간 의약을 의지하지 않고 그의 손에 치료를 받아 오늘까지 나았다. 물론 의약을 쓰는 것이 죄가 되거나 구원 문제는 아니다. 의약으로 치료하는 것은 자연의 요법이요 신유로 구원받는 것은 초자연의 요법이다.


그는 여기서 의약을 쓰는 것과 신유를 나름대로 정의하는데, 그 근간에서는 교단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입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론적 접근과 달리 이 목사가 병상에서 보여준 의약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 목사는 사역 중에도 건강상의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초임 목회지인 수원교회에서의 발병에서 비롯하여, 황해도 송화읍 무초교회의 부흥집회, 해남 부흥시의 맹장염 등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럴 때마다 이 목사는 모든 의약과 의술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의술에 대한 불신에 있다기보다는 이 목사 자신의 표현대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복음을 그대로 받고, 그대로 의지하고, 그대로 체험하고, 그대로 전함을 사명으로 알고 정진하던 그의 투철한 신앙에서 비롯한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그의 신본주의적 신앙이 그로 하여금 신유를 체험하게 한 것이다. 즉 그는 교리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속한 교회의 입장에 충실하면서도, 생명을 잃은 문자만으로 전락하기 쉬운 교리의 자구(字句)에 의존하기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는 전인적 신앙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이 성봉 목사는 이러한 복음주의적, 성서적 신앙과 신학적 토대 위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 제일주의, 그리고 민족과 세계 모든 영혼을 구원시키려는 불타는 구령열이라는 두 바퀴에 평생을 싣고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라는 좌우명으로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다.



[처음으로]


Ⅴ. 이 성봉 목사의 부흥 설교에 대한 설교학적 고찰


한 사람의 설교를 평가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고,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이유로서는 우선 쓰여진 설교(geschriebene Predigt)와 선포된 설교(verkündigte Predigt) 사이에 게재될 수 있는 괴리를 들 수 있다. 선포되는 설교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이야기하며 성령의 역동적 역사에 의존하는 영적 차원을 가졌고, 동시에 구체적인 상황을 가진 회중을 수신자로 하는 현장의 연설이다. 회중은 설교자를 '보며' 집회가 갖는 분위기를 '느끼며' 말씀을 '듣는다'. 즉 시청각적 요소와 현장성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이 때의 설교가 반복되지 않는 일회적 사건이긴 하지만, 말씀에 대한 회중의 동화와 수용이 용이하며, 예배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의 현장성을 체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쓰여진 설교에는 현장성이 배제된다. 상황을 따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로 진행되고 가감되는 강단 위의 설교와 달리 하나의 문장화된 설교는 정선된 언어의 선택과 숙고된 문장의 배열, 그리고 가시적 청중 대신에 거리를 띄우고 냉철한 관찰력으로 반복된 검토를 할 수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당연히 예배라는 상황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갖는 현장성을 설교에서 기대할 수 없고, 동시에 시각적 작업에만 의존하여야 하기 때문에 전달의 효과라는 면에서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제한성은 종종 선포되는 설교가 갖는 역동성을 간과해 버리고, 설교 내용 이외의 설교자 개개인이 소유한 독특한 개성과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가 전달에 끼치는 영향들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시도하는 작업은, 비록 대단한 정도의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이런 위험성이 내재된 제한적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제한된 작업'은 먼저 이 성봉 목사의 설교가 갖는 설교 형태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내용상의 특성과 그리고 설교가 행해졌던 시대상황과 설교의 접맥성을 분석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하여 "이 목사가 갖고 있던 신학적 입장이 얼마 만큼 그의 설교 속에 투영되었는가?", 그리고 "설교자로서의 그의 관심이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부흥설교가 지향해야 하는 제 요소가 어떤 것인가?"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A. 설교형태의 특성


설교형태(Predigtform)는 설교내용(Predigtinhalt)을 담아서 실어 나르는 틀로서 설교를 하나의 연설로 만드는 결정 요인임과 동시에 회중에게 '전달되는 설교'로 각인되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마차에 비유하면, 설교형태는 설교내용이라는 금덩이를 - 경우에 따라서는 똥덩이가 될 수도 있는 - 실어 나르는 마차와 유사한 것이다. 이 마차는 나무로 만들 수도 있고, 철이나 금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금덩이에 어울리는 마차가 어떤 마차여야 한다는 것은 명약관하(明若觀火)하다.

이 목사의 부흥설교가 갖고 있는 형태상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가 채택한 설교본문의 경향성과 설교제목의 설정 경향, 설교전개와 설교형식의 특성을 알아보아야 한다.


가. 본문 사용과 제목설정의 경향성

설교에서 본문 사용은 설교를 다른 연설과 구분하는 일차적 기준으로서, 단일 설교의 구성 목적을 위하여 선택된 성경의 부분, 특정한 구절로 한정하여 그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주제설교로 정의되는 중세의 탁발승단에 의한 Sermo를 제외하면, Homilia∼Sermo∼Contio로 이어지는 설교역사에서 성경본문의 사용은 기독교 설교사에서 일관되게 지켜온 것이다. 본문을 중심한 설교는 청중을 바른 신앙에 설 수 있도록 안내하며,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돕는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성봉 목사의 설교는 그가 신학생, 전도자, 교역자를 위한 부흥지침서로 발간한 요약식 설교집인 "부흥의 비결"이라는 설교집을 제외하고는 "사랑의 강단"과 "임마누엘 강단"이라는 그의 저작집 2,3권에 모두 49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설교를 토대로 이 목사의 본문선택의 경향성을 살펴보면, 신약성서 39편, 구약성서 8편 그리고 신구약성서 모두를 사용한 본문이 2편에 이른다. 수치만으로 볼 때, 이 목사의 본문선택이 신약성서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초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경향, 그리고 그들로부터 교육받은 한국교회 강단의 그것과 일치한다. 이 경우에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려는 의도가 신약성서, 그 중에서도 복음서 위주의 본문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데, 총 39편의 신약성서 본문 가운데 복음서에서 19편(마태복음 10편: 마가복음 2편: 누가복음 4편: 요한복음 3편)의 본문을 선택한 이 목사도 역시, 수치상에 관한 한, 전통적 맥락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그에게서는 이러한 성경본문의 선택 수치가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이 목사의 의도와 설정한 주제가 설교의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고, 본문은 단지 형식상의 설교근거의 기능으로 축소되는 것이 그의 설교특징이라는 점과, 또 그가 신본주의적,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를 갖고서 모든 본문을 풀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설교본문에 관한 한, 그 어떠한 신약-구약성서 간의 괴리도 이 목사에게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 설교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부흥설교에 흔히 보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본문의 길이에 관한 한, 이 목사의 설교 49편 가운데서 1절에 국한된 본문이 16편, 2-5절의 분량이 15편, 6절 이상이 7편, 그리고 2군데 이상의 본문이 11편으로 나타난다. 이 목사의 설교가 주로 부흥집회시에 행해진 부흥설교를 정리한 것임을 염두해 둘 때, 이러한 분포는 일반적인 부흥설교가 취하는 본문의 길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부흥설교에서는 대개 한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직선적인 도전형의 선포로 일관하고, 대개의 경우에 부흥집회를 위한 회중의 심령 준비로 인해 이러한 단선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설교자는 이런 목적을 위해 대개 자신이 설정한 핵심적인 주제를 외형적으로 뒷받침해줄 만한 단일 성구를 설교본문으로 채택하는 것이 대개의 경향이다.

이에 반해 수치로 보여지는 이 목사의 설교는, 비록 1절을 본문으로 택한 수치가 일반 설교에 비해 월등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강의 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흥설교가 거의 본문이 담긴 상황과 맥락을 무시한 채 단어의 한 표현에 집중하는 것처럼, 이 목사도 역시 본문의 길이가 아무리 길다 해도 대부분 한 구절, 혹은 단어 하나에 국한하고, 다른 부분들은 무시한 채 설교해가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다.

설교 본문의 길이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요즈음 유행되는 강해설교도 역시 설교본문의 길이와 상관없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흥설교에서 본문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 곧 본문 중심의 설교 대신에 설교자의 주관을 내세울 수 있게 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면, 이는 모든 여건과 가치관이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 세계와 설교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론적 당위를 염두에 둘 때, 이것은 반드시 숙고되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부흥집회라는 한시적 축제에서 행해지는 설교가 곧 부흥설교"'라는 협의의 정의가 여전히 유효하다 하더라도, 말씀 대신에 설교자의 주관이 설교를 지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제 설교제목의 경향성과 관련하여 이 목사의 설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흔히 설교에서 주제(Subject)와 명제(Prorosition) 그리고 제목(Title)의 개념을 별 생각없이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이것들은 마산과 부산이 다른 것 만큼이나 상이한 것이다. 주제가 설교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고, 명제는 설교를 한 문장으로 축약해 놓은 것이라면, 제목은 설교를 광고할 때 사용되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제안적인 단어나 구(句)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제목은 무엇보다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 설교를 듣게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호기심과 관심,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함과 동시에 설교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방향을 추정 케하는 암시성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소위 제목설교와 주제설교라는 용어마저 구분치 않고 사용해 온 한국교회 강단은 대개 주제를 곧 제목으로 그리고 제목을 곧 주제로 계속 혼동해 왔고, 따라서 설교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제목에서 함축되고, 또 설교가 제목에 따라 진행된다.

이 목사의 경우도 이러한 일반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목사에게서 설교제목의 설정(Themasetzung)은 두 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의 설교 대부분에서 보여지는 것으로서 성경본문에 나오는 한 표현, 한 단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하나님을 믿으라"는 제하의 설교는 그 제목을 설교본문으로 삼은 마가복음 11장 22절의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에서 그대로 발취한 것이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제하의 설교도 역시 성경본문 사도행전 16장 31절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에서 따온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성경구절로 택한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대신에 그 본문이 감싸 안고 있는 대강적인 주제를 기초로 설교자의 의도를 연결시켜 제목을 설정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가령 요한일서 1장 1-10절을 본문으로 한 "생명 체험자의 특징"과 같은 설교가 이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설정된 설교제목은 회중이 그 제목만으로도 설교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물론 이 목사가 활동할 당시의 회중의 이해도를 염두에 둔 것이고, 이미 부흥성회라는 특수한 집회가 사전에 고지되고 회중이 심적으로 준비된 상태임을 감안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제목이 가지는 함축성을 제외하고는 설교 전에 설교 윤곽을 너무 자세히 고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 이로 인해 회중의 흥미를 그만큼 반감시키며 진부함을 더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설교제목이 단지 하나의 단어나 표현에만 국한될 뿐, 성경본문의 전체적인 정황과 지향하려는 의도를 포괄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제목으로 추출한 부분 이외의 본문은 대부분 설교에서 취급되지 않고 있는 점은 한국교회 제목설교의 한 단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할 것이다.

나. 설교전개상의 구조 분석

한국교회 설교의 전통적, 전형적인 방식의 하나는 설교제목 아래 성경본문을 두고 본론을 몇 개의 제목으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각기 다른 성경구절이 인용되는 형태이다. 또 다른 경우는 특정한 성경구절 없이 설교자가 정한 주제에 따라 3-5개의 대지를 구분하고 거기에 맞는 성구를 인용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그 설교의 출발점이 성서본문이 아닌 설교자의 관심이고, 설교의 진행도 역시 성경본문이 아닌 설교자의 주관적 사고에 종속된다.

물론 설교에서 설교자의 주관적 입장이 전혀 배제될 수는 없지만, 설교의 출발이 성경본문이고 해답의 도출도 역시 본문에 국한되는 성서적 설교를 지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 할 때, 설교자의 주관은 본문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선택부분에 한정되어야 한다. 즉 설교자의 자유는 본문 안에 들어간 후의 자유이지, 본문을 제외한 설교자 자신의 사고전개의 자유는 아닌 것이다. 만일 이 원칙이 무너지게 되면, 설교는 설교자의 신학적 지식에 근거한 종교담화로 추락하게 되고, '성서적 그리스도인'의 양성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성서적 설교에 대한 예찬이 일반적 공예배에서 행해지는 설교의 지향점이라면, 특수한 목적을 가진 부흥집회의 경우에 설교는 그 집회가 상정한 주제와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당위성은 우리가 경시하기 쉬운 주제설교적 접근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실제로 주제 설교는 모든 성경구절이 급변하는 세계와 그 세계가 토해내는 다양한 문제들에 적합한 본문을 만족하게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필요한 장르이다. 동시에 특정한 성격이 압도하는 예배, 가령 절기예배나 헌당식 취임식 기념예배, 특수 집회 등 구체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가 분명한 경우에도 역시 이 형태의 설교가 강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 목사의 설교가 부흥설교로서 갖는 형태상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우선 이 목사의 설교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구성형식인 서론-본론-결론의 3단 구성으로 일관한다. 이런 구성은 설교자가 전하려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주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더욱이 그 당시 회중들의 전체적인 이해능력 면에서 단순성의 원리가 효과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이것은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1) 우선 그의 설교에서 드러나는 서론의 형식을 보면, 두 가지의 특징이 발견된다. 가장 주목할 특징은 그의 설교가 대부분 설교의 서두부터 설교자가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회중과 대면시키는, 소위 '직접 들어가는 방식'을 채택한다는 점에 있다. 가령 그의 설교 "회개하라"(마 4:17; 벧후 38-9)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설교가 시작되고 있다:


회개는 주의 명령이요, 주의 소원인 것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이는 하면 하고 말면 말고 할 것이 아니다. 아니하면 아니되는 주의 뜻이니라".


K. Barth는 예배 자체가 설교에서 서론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도입부를 나열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입장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히 부흥성회라는 특별집회에 임하는 회중들이 어느 정도는 말씀에 대한 기대와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임을 감안할 때, 회중을 말씀과 직접 대면시키는 이 서론 방식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목사에게 보여지는 또 하나의 서론 방식은 설교주제에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소위 '돌아 들어가는 방식'이다. 가령 이 목사 자신이 만주목회 시의 경험으로 시작되는 "살았느냐 죽었느냐"라는 설교나, 미국에서 요구하는 인물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는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 등이 이에 해당되는 설교라 할 수 있다. 주제에 대해 멀리서부터 돌아 접근하는 이 방식은, 설교의 승패가 설교 시작후 2-3분 내에 결정되다는 임상실험 조사를 염두해 둘 때, 회중의 들으려는 욕구와 호기심을 자극시킨다는 점에서 흔히 권장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더욱이 긴장으로 굳기 쉬운 설교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며, 설교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회중이 무리없이 소화하도록 '이해의 주단'을 깔며 회중으로 듣고자 하는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서론의 주요 기능이란 점에서 설교자의 체험, 다양한 예화로 시작되는 이 방식은 전자에 비해 더 큰 효과가 있다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J. A. Broadus의 주장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사람이란 본디 갑작스런 변화를 싫어하고 점진적 접근방식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어떤 건물에 현관이나 출입구가 잘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외견상 좋지 않을 것이다. 음악에서 정성들여 작곡한 대곡이 있다면, 그것은 항상 약간의 전주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서론이 없는 작문이나 연설도 불완전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2) 이 서론에 이어지는 설교의 몸통, 즉 본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의 설교는 철저히 설교자의 주관이 지배하는 주제설교, 설교제목에 의해 진행되는 제목설교가 대강의 주류를 이루고, 서사문학의 장르에 포함되는 본문인 경우에는 성경이야기를 따라 설교해가는 본문설교가 몇 편에 걸쳐 나타난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살았느냐 죽었느냐"(계 3:15; 마 22:32)라는 설교를 보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성경본문 속의 내용으로부터 설교제목을 따온 후, 설교의 진행을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설정 하에 모두 5개의 대지로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 그는 5개의 대지, 1. 호흡으로(=기도로), 2. 감각으로(=회개로), 3. 활동으로(=움직이는 신앙), 4. 열정으로(=열심), 5. 유연함으로(=포용)를 설정해서 설교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설교의 본문 접합성은 신앙촉구의 근거를 제시함과(계 3:15) 하나님의 정체성 고지(마 22:32)에만 국한되고 있다. 즉 설교의 도입부까지만 본문은 기능하고, 실제 설교본문의 각 대지는 성경본문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철저히 설교자의 주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의 설교의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그의 설교 전개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특징은 본론의 대지 배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수를 이해하느냐"(마 22:42; 16:15-16)라는 설교를 보면, 이 목사는 본론을 3대지(1. 성경이 증거함, 2. 신구약의 성도들이 증거함, 3. 예수 자신이 증거함)로 진행시키는데, 1, 2대지가 대등한 분량으로 처리되는 반면, 3대지는 5개의 소대지(죄가 없으심, 그의 말씀, 그의 하신 일,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 부활하심)를 수반하면서 전체 설교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이 목사의 설교의 핵심이 바로 이 대지 하나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대지야말로 그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강해설교에서 요구되는, 가급적 균등한 대지의 분배가 모든 경우에 합당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대지가 너무 많은 소대지를 갖게 됨으로써, 회중들이 설교전체의 윤곽과 흐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도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일정한 줄거리가 있는 서사문학적인 본문의 경우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최근들어 우리에게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한 이야기식 설교(StorytellIng)의 본문으로 적합한 구체적인 하나의 사건을 모토로 한 기사는 구약성서 역사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의 비유를 비롯하여 신약성서의 복음서 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서 안에 수록된 이런 특이한 문학 장르를 새로운 설교 방식 속에 담아 전달하는 것은 그만큼 설교의 다양성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목사의 설교에서도 이런 서사문학적 본문을 취급한 설교들이 모두 7편이 발견된다. 물론 설교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진행하는 이야기식 설교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밖의 다른 설교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이 설교들은 보여준다. 가령 "갑절의 신을 주소서"(왕하 2:9)라는 설교를 예로 들어보자. 이 목사는 이 설교의 기본축(명제)을 '엘리사의 신앙을 본받자'라고 설정한 후, 다음과 같은 4대지를 제시한다:

1. 엘리사는 엘리야를 끝까지 끈기있게 따랐다.

2. 갑절의 신을 요구함

3. 승천하는 엘리야를 바라봄

4. 자기 옷을 찢음

이런 류의 설교가 다른 설교와 구분된다는 것은 그 전개방식에서 철저히 본문의 사건진행을 견지하며 그로부터 대지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목사 설교가 대부분 제목설교로 정의될 수 있는 반면, 위의 설교를 비롯한 몇몇 설교는 적어도 형태상으로는 철저한 본문설교의 진행방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이런 서사문학적인 구약성서 본문은 그 해석에서 자칫 복음과 관계없는 윤리, 도덕적 차원의 각성 정도로 메시지를 이끌기 쉬운데, 이 목사의 경우는 어떤 본문이라도 무리한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인한 사건의 영성화(Spiritualisierung)를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그 본문 속의 한 표현이 가지는 동작에 착안해 그것을 기독론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하고 있다. 위의 설교에서 2. 3대지의 '요구', '바라봄'이라는 표현을 인용한 후, 엘리사가 바라본 인물이 엘리야였다면, 우리가 따르고 바라고 요구해야 할 인물은 그리스도라는 방식으로 설교를 풀어가는 것이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이 목사의 설교는 본론 구성에서 예외없이 3-5개의 대지를 사용한다. 이 병렬 구조 방식은 한국교회 강단의 전통적, 일반적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부흥설교든 일반 주일 공예배 설교든, 다수의 설교자들에 의해 애용되어온 것이 바로 이러한 병렬적 설교방식이었다는 사실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은 설교를 듣는 회중의 이해도를 생각할 때, 이렇게 잘게 쪼개어 전달하는 설교가 복음을 이해하거나 기억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또 선교 초창기의 회중의 지적 수용도 등이 오늘 날에 비해 월등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기에, 보다 쉬운 설교가 요청되었던 것도 이 형태를 고착화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설교가 본문의 깊이있는 의미를 드러내 회중의 삶 속으로 해석해 넣는 '성경적 설교'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전체적인 숲은 보지 못한 채 토막 교훈만을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본문에 따라 병렬적 구분이 가능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주일 낮 예배의 정형으로 자리잡는 것에는 깊이있는 재고가 요청되는 방식이다.

부흥성회라는 '축제'에서 행해지는 부흥설교도 역시 회중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려는 설교가 아니라 죄와 회개 중생과 구원, 삶의 변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목적설교이다. 당연히 회중의 지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심령에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려면, 주제 자체도 단일해야 하고 동시에 그 구조도 가장 평이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많은 대지로 나누어 전달되는 설교가 효과적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책으로 정리된 이 목사의 설교와 그가 실제로 부흥집에서 행했던 설교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에서 더욱 개연성이 짙다. 김 진환은 이성봉 목사의 집회가 "저녁에는 천로역정 강화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낮에는 요나서 강화로 흐뭇한 감화를 끼쳤고, 새벽의 회개운동은 특히 놀라워 어디를 가든지 자리가 비좁아 주최측을 당황케 하였다"고 회고하는데, 이것은 이 목사의 문자화된 설교와 부흥회 현장 사이의 괴리를 뒷받침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소위 부흥집회의 전문가인 이 목사가 부흥설교의 효과적 전달이란 측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할 때, 설사 위의 병렬식 구조를 택했다 하더라도, 이 목사 특유의 방식으로 그 전달효과를 극대화하였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이다. 특히 한정된 기간 동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열리는 부흥집회에서 설교자가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를 인지하고 주도적으로 구성하는 데 이 설교형태가 비교적 적합한 방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제목설교의 형태를 즐겨 사용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3) 이 목사의 설교형태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설교의 결론 부분이다. 변증법적 신학자들은 설교에서 서론과 결론의 불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곽 안련이 정의하듯이, "설교 전체의 관이요 불타오르는 중심점"이 곧 결론이다. 설교의 실패와 성공, 이 설교가 나와 상관이 있다고 느끼는 설교와 회중의 접맥이 모두 이 결론 부분에 달려 있다. 또 설교자는 흩어졌던 회중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고 자신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할 마지막 기회를 결론 부분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론의 중요성 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이 결론이다. 많은 설교학자들이 이 부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설교형태에서 만고불변의 확고한 모범답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론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결론이 설교의 정점이라는 인식 하에 작성해야 할 것, 논리적으로 설교 전체의 흐름과 자연스런 일치를 이루어야 할 것, 간결성을 유지하면서 설교의 요약을 내포해야 할 것, 회중의 적용을 다룰 것, 그리고 새로운 주제나 문제를 제기하지 말 것 등이 결론작성에 관해 일반적인 주의사항으로 제안되어 왔다.

이 성봉 목사의 설교는 그 결론이 거의 유사한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애용되어온 방식, 즉 설교전체의 내용을 요약, 반복하면서 실제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기도의 목저이 순결하여야 하고,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여 간절히 전심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기도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기도는 응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아 항상 깨어 쉬지 말고 기도하세. 주님 부탁하셨으니 쉬지 말고 기도하세. 말세에 우리에게 성신을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주실 줄 믿고 쉬지말고 기도하세


이러한 결론이 설교내용을 요약함으로써 회중으로 하여금 설교의 핵심을 정리하게 하고 기억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영감어린 음성에 실려 결론의 부분이 선포되었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는 회중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요약식 결론에서 동일성을 피하고 다른 표현과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 지적은 여전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목사는 결론부분을 회중의 실천적 영역에 연결시켜 구체적인 적용지침을 제시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신앙이 결국은 구체적 틀에 담겨야 하고, 신앙의 진보를 위해서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기도 등의 싱앙 행위가 고착되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이런 방식은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은 대다수 회중들을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제안이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 시작된 설교가 마지막에 윤리적 행동화로 한결같이 귀결되는 것은 자칫 설교를 윤리, 도덕적 지침의 장으로 변절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깊이 숙고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과 관련한 또 다른 특징은 많은 설교가 이 목사의 노래로 끝맺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목사가 설교 도중에 찬송을 애송한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직도 그가 작시한 찬송 가운데 애송되는 것이 적지 않고, 또 설교 내용과 연결되는 찬송을 설교에 도입함으로써 메시지의 전달에 지대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 목사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다. 그는 동경유학 시절에 그가 지은 '허사'가 등을 레코드에 취입하여 음반을 통한 선교를 시도하였으며, 특히 그의 영감어린 음성이 많은 심령에 은혜를 끼친 것도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특징적인 것은, 비록 그가 많은 곡에 가사를 붙여 애송했지만, 설교의 마무리 부분에서 주로 설교의 내용에 부합되는 곡이나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곡을 한정하여 노래했다는 점이다. 가령 "실패의 원인과 회복의 비결"(눅 22:31-32)이라는 설교를 보면, "죄지은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 아니요, 회개하지 못한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구원 얻었고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였다... 스스로 돌이키라. 주님 눈동자를 보고 주게 돌아오라"로 결론을 맺은 후, 다음과 같은 찬양으로 끝맺고 있다:


내맘에는 원이로되 이 육신이 약하여

때를 따라 쓰러져도 주님 나를 붙드네

마귀시험 지독하고 사람단련 많으나

여호와의 크신 사랑 내 승리가 되시네.


이처럼 그가 설교를 끝내며 부른 찬송은 그가 정리한 결론의 내용을 가사의 형태로 다시 확신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부흥성회에서 이러한 찬양으로의 끝맺음하는 것은 집회의 분위기를 고조하고, 심령을 메시지의 방향으로 정렬하며, 동시에 각 심령에 평안과 희열을 심어 주는 순기능을 담당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처음으로]

 

B. 부흥설교의 내용 분석


설교사(說敎史)를 통해 볼 때, 광의적 의미의 부흥설교가 주로 인간 개인의 영성을 문제삼고 하나님과의 직접적 관계성의 증진에 초점으로 맞추는데 반해, 특정한 부흥집회에서 행해지는 협의적 부흥설교는 개인의 회개와 구원, 이에 따른 삶의 변화에 일차적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일반적인 예배에서 행해지는 교리적, 교육적 설교와는 그 전달방식과 다루는 테마에서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2장에서 살펴보았다.

한국교회 설교의 결정적인 틀을 제공한 선교사들의 설교가 보수적, 비정치적 그리고 성경중심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청교도적 신학의 기반 위에 성경적 신앙과 경건한 삶으로의 변화, 종말과 경성된 삶을 주된 강조점으로 하고 있다 할 때, 이 성봉 목사의 설교도 역시 신학적, 내용적으로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의 설교를 '부흥설교'(Revival Preaching)라 규정하는 것은 설교 내용뿐 아니라 그의 설교의 장이 이 목사가 평생 헌신한 부흥사역과 밀접히 연결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설교는 특정한 집회를 전제한 협의적 의미의 부흥설교이며, 또한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주된 경향은 설교사에서 발견되는 협의적인 부흥설교의 그것과 일치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모든 부흥운동은 사회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혹은 영적이든 그 운동이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불가피한 상황을 언제나 전제하고 있었다. 따라서 설교를 지탱하는 2대축이 Text와 Context라는 원론적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부흥운동과 부흥회 그리고 부흥설교를 결정하는 하나의 결정요인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 목사의 설교내용을 분석하기 전에 먼저 그가 활동하고 설교했던 당시의 정황을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목사가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1928-1963년은 민족사적으로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시련과 고난의 시기였다. 1910년으로부터 시작하여 1945년까지 지속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민의 식민화, 그 뒤를 이어 발발한 3년 간에 걸친 한국전쟁이라는 최대 비극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 이러한 두 사건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라는 언어 유희를 넘어서 민족의 운명 전체를 결정하는 운명적 사건 그 자체였다. 함 석헌의 말처럼 우리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나라의 힘이 말라버렸고... 국가사상이 옳게 발달하지 못했으며... 사상적으로 무산이요 지식적으로 무지일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무지"에 이르고 말았다.

그나마 기독교가 정치적 절망의 순간에 민족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격려하며 삶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 역할을 하였지만,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질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경제적인 피폐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정신도 역시 극단의 황폐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던 시기, 피어오르던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던 시기, 전쟁으로 인해 삶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던 시기!

그러나 상황이 만들어 주던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복음을 위한 기회에 다름 아니었다. 상황의 비참은 영적 갈급을 높여주는 거름이고, 인간의 교만을 하나님 앞에 무릎꿇리는 호기(好機)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성봉 목사가 복음을 들고 헌신한 시기는 역사상 부흥운동이 요청될 수 밖에 없었던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시기였다.


가. 이 성봉 목사의 부흥관

이 성봉 목사의 부흥사역은 이렇게 갈급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전국 부흥목사로 발령받고 행한 연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만세전에 예정하신 주님의 계획'으로 믿었고, 역경의 상황을 복음의 황금어장으로 알고 헌신했던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만약 이 성봉 목사의 설교가 제 3자에 의해 부흥설교로 평가된다면, 이 목사 자신이 생각하는 부흥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한 확고한 인식은 그 자신의 부흥사역의 당위성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인식 위에서 그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방향이 정립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목사의 부흥관은 '부흥의 비결'이라는 요약설교집에 실린 두편의 설교 속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부흥이란 "죽은 자를 살리며(요 5:24), 병든 자를 치료하며(출 15:26), 약한 자를 강건케 하며(고후 12:10), 잠자는 자를 깨우며(욘 1:6), 꺼진 불을 다시 일으키며(딤후 1:6), 넘어진 자를 일으키며(잠 24:16), 물러가는 자를 전진케 하며(히 10:39), 곁길로 가는 자를 바른 길에 세우는 것이다(사 42:17)".

다른 말로 하면, 부흥이란 영적인 각성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의 무장과 삶의 변화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웃사랑에서 증명하는 종횡의 성격을 갖는다. 동시에 이 부흥은 단지 개인적 차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깨어 있고 성령으로 넘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회에도 해당이 된다. 이 경우 교회의 부흥이란 오늘날 흔히 이해되는 교회의 양적 성장이나 외형적 팽창과는 거리가 먼 영적 각성과 참 교회됨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부흥이 필요한가? 이와 관련해 이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부흥은 "하나님의 요구이며(눅 12:49),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며(신 28:1-14),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마 3:5), 천국의 기쁨을 주고(롬 14:47), 형식주의 거짓교회를 부수며(왕상 18:40), 모든 교회와 신도가 부흥을 원하며(사 8:16-17; 암 8:11-13),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행 2:41, 4:4).

이 부흥은 특수한 하나님의 사람(렘 1:18), 하나님의 말씀(시 19:7) 그리고 성령의 운동으로(욜 2:28)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목사는 부흥을 참 부흥과 거짓부흥으로 구분하면서 그 각각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 부흥은 죄와 허물을 깨닫고 그 심령에 수치를 느끼고 변화되어, 희열로 산 그리스도를 모시며, 그 심령은 소망을 하늘에 두고 달음질을 하며,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파급되고(행2장), 성결의 기갈과 만족을 느끼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제일 주의로 그리스도의 용사로서 지원병이 된다. 그리고 담대히 승리의 혁명적 세력으로 세속의 성벽을 무찌르고 악마의 포로를 석방시킨다.


거짓 부흥(유 4-19; 행 19:14-16)은 죄에 대한 통회가 없고 성결의 무관심, 천박, 피상적, 기분적, 감상적이며, 그림자로 본체를 대신한다. 생명의 운동은 없다. 일시적이요 영속석이 없고 공허감을 느끼다가 절망에 빠진다.


즉 모든 부흥운동은 영적인 각성을 바탕으로 가치관과 삶의 모습까지 변화시킴을 목적하는, 소위 '살리는 운동'으로서, 이것의 진위 여부는 신앙 안에 온전히 서고 신본주의적 인간으로의 변화와 유지가 인정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해는 1930-60년대에 한국 교회를 흔들었던 일부 사이비종파의 신비주의적 경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부흥집회가 전인적 차원을 표방하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설교 내용의 경향성

이 목사의 부흥설교는 이러한 확고한 부흥관에서 그 방향과 내용이 정립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전한 메시지의 주된 주제는 어떤 경향을 띠고 있는가? 그의 설교는 외형적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들은 내용적으로 교리적 설교와 신앙의 각성을 촉구하는 설교로 크게 구분된다. 조사한 49편의 설교 가운데 기독교의 특질을 설명한 "복음의 종교"(롬 1:16-17), 성령의 본질을 다룬 "그리스도의 영"(롬 8:9; 고후 13:5), 기도의 본질을 설교한 "응답받는 기도"(마 7:7-11), 십자가의 정체를 분석한 "십자가의 도"(고전 1:18; 갈 2:20), 교회관을 설파한 "간난산상의 미궁"(딤전 3:15), 이단의 문제를 다룬 "거짓 스승을 삼가라"(벧후 2:1), 그리스도론을 설교한 "예수를 이해하느냐"(마 22:4; 16:15-16), 인간론을 다룬 "깨달으라"(시 49:12-20), 그리고 성결과 재림의 개념을 접근한 "성결의 복음"(히 12:14)과 "재림의 복음"(마 24:1-51)등 10편이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와 정리로 규정되는 교리설교에 속한다.

하지만 이 목사의 경우, 이러한 교리 설교가 지적 정보의 전달에 치중한 건조한 교리적, 교육적 설교 일방에 치우치지지는 않는다. 비록 다루는 주제와 그 주제에 접근하고 설명하는 것이 논리적 체계적이고, 또 해당 주제에 대한 분명한 논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교리설교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설교들은 항상 회중에 대한 반응과 결단 그리고 삶의 변화를 교리적 내용으로부터 이끌어냄으로써, 지적 차원과 정적, 의지적 차원이 연결되고 있다.

이 목사가 지적 정보의 전달만으로 그치지 않고 신앙의 각성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변화라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그가 이해하고 있는 부흥관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 성봉 목사의 부흥설교를 보면, 협의적 의미의 부흥설교가 갖고 있었던 설교 내용상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줄 뿐 아니라, 이 목사 자신이 설파한 부흥의 개념을 정확하게 실천하려했던 그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동시에 그의 신학적 경향성이 얼마나 설교에 투영되고 있나 하는 것도 이 작업을 통해 드러난다.

1. 구원의 복음

이 성봉 목사에게서 보이는 가장 지대한 관심은 개개인의 구원이다. 그의 신학적 경향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과 이 세계의 모든 불행은 죄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생은 다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멸망에 직면"한 상태이다:


이 인생을 구원해 보려고 정경문제, 정치문제, 예술문제, 과학의 발달, 지식만능을 부르짖고 있으나 그것보다 먼저 인생은 죄악에서 구원받는 일이 급선무란 말이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제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금전, 지위 명예 향락을 가져다주어도 참 만족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계, 이 사회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지배하여 멸망의 구렁이로 몰아 넣는 것이다.

이처럼 이 목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인간이 지닌 죄의 문제에서 보기 때문에, 그의 설교에서는 특히 이 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목사가 이해하는 죄는 "옛 성질이 자주 나타나 발동하는 문둥이 같은 죄성질"인 원죄와 "어려서부터 지은 모든 무거운 자범죄"로서 보수신학이 이해하는 죄관과 일치한다. 이 죄는 성결과 대칭되는 것으로서 더럽고 질병, 흑암, 불결, 사망, 고통 그 자체이다. 이 죄가 인간을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은 평화를 누릴 수 없고 서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일체의 종국은 불행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죄 - 죄악의 습관, 죄악의 형벌, 범죄한 고통, 죄악의 성질, 모든 환난과 사망에서 구원받아야 비로소 생명이 보장된다(주 예수를 믿으라. pp. 150-156).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표현을 빌리자면, 죄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깊은 소외, 곧 존재 자체로부터의 소외이고, 이 죄로 인해 존재 자체의 신비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와의 올바른 관계도 불가능하다 할 때, 이 목사의 설교에서 성도와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 물들어 있는 죄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가 이러한 죄의 속성과 그 결과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이 구원을 3단계로 이해한다.

첫 단계는 의롭다 하심을 받고(롬 5:1), 중생(벧전 1:23)하고, 후사가 되는(갈 4:6-7) 과거적 구원(엡 2:5-8)으로서 그에 의하면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진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성취된 구원을 믿으면 주관적 구원이 성취되고 체험된다. 두 번째 단계의 구원은 생명이 자라고(요 10:10), 생활이 거룩하여지고 (요 17:17), 능력을 받는(빌 4:13) 현재적 구원(빌 2:12-13)이며, 세 번째 단계의 장차 올 구원은(고전 15:49) 주의 재림과 함께 실현되는 것으로서 몸이 변화되고(살전 4:16, 고전 15:51-53), 보상의 심판을 받고(고전 3:13, 마 25:14-22), 영광의 왕이 된다(딤후 2:11-12). 즉 이 목사는 과거의 구원을 죄악의 형벌에서, 현재의 구원을 죄의 지배에서 구원받는 것으로 해석하며, 미래의 구원이야말로 부활, 완성 그리고 영생을 얻게 되는 최종 단계라고 본다. 또한 인간 모두가 빠짐없이 구원받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 자체에 주어진 가능성은 아무 것도 없다. 이 구원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선물, 즉 높아지고자 했던 인간의 교만을 하나님의 겸비와 낮아지심, 즉 스스로 육신의 몸을 입고 십자가를 지심에 의해서만 인간에게 가능성으로 열려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동인(動因)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이 목사는 이 구원을 인간에게 가져오는 유일한 통로가 하나님의 사랑이 동인이 되어 인간이 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 뿐임을 강조한다:


예수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예수를 모시기만 하면 현재문제, 미래 문제, 개인 문제, 가정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가 다 해결되건만 그저 사람들은 몰라서 몇날이나 더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허영에 속아서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장사하고, 먹고 자고 애나 낳고, 먹고 자고 변소에나 다니면서 번민 고통에 병들고, 마지막에는 죽어서 땅속에 들어가 해골바가지가 되고 화장장에 가서 한줌의 백골, 재와 연기로 사라지는 경우가 이 시간에도 부지기수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유일한 구원자인 예수와 연결될 수 있는가? 이 목사는 이를 위해 철저한 회개와 신앙을 제시한다. 회개의 본질에 대해 이 목사는 그의 설교 "회개하라" (마 4:17, 벧후 3:8-9)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회개는 구원의 입문이요 기초인 것이니 복음의 대지가 회개요, 저주와 멸망을 막는 요새가 되는 것이다... 회개는 지적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이며... 정적으로 죄를 슬퍼하는 것이다... 의지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행위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즉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입술의 사건이 아니라 지, 정, 의, 행의 전인적 사건이요, 반드시 행위가 수반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특히 이 목사는 회개의 행위적 열매를 강조한다. 즉 소극적으로 변상을 통해 죄를 회개함과 적극적으로 삶이 변하는 의의 열매를 맺는 단계까지 나아갈 때, 진정한 회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지은 죄, 양심상으로 지은 죄를 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사람과 관련된 것은 사람과 해결지어야 한다." 이 회개가 인간을 예수와 관련지우고 죄로부터 구원하는 첫걸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회개가 이 목사의 부흥설교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또 부흥집회에서 회개의 역사가 활발했던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이렇게 이 목사가 회개를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신학적 이유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생활이 건덕을 세우는 모범적 성직자의 삶이었고, 또 이 목사 자신도 대단히 투철한 회개의 실행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청교도식의 철저한 회개를 강조하여, 행동화가 가능한 한 반드시 보상과 변상의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자신이 이런 회개관을 몸소 실천하였다. 가령 그가 예수를 영접한 후, 어릴 적에 나이를 속이고 차표를 반표로 속여 구입한 것을 회개하면서 나머지 금액을 우편으로 지불했던 것은 이를 잘 반증한다.

이 회개와 더불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있는 두 번째 단계는 '믿음'이다. 이 목사는 신앙을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대한 인간편의 반응으로 해석하면서, 참된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 신앙은 예수를 통하여 신구약의 3만여 가지의 약속을 그피로 인쳐 우리에게 주시고 성신으로 알게 하시는 지각으로 이 말씀 전부를 다 나 위하여 주신 줄 그대로 받고, 그대로 의지하며, 그대로 바라고, 그대로 좇고,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구속사건에서 예수가 구세주가 되심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제일주의의 절대적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주께 맡기는 것이다. 이 믿음이란 결국 가치의 문제와 연결되는데,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또 최고의 권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일치한다. 바로 이 신앙과 회개가 함께 병행될 때, 인간의 불가능이었던 구원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이 목사의 신앙이다. 성도의 구원! 이것이 바로 이성봉 목사로 하여금 평생을 헌신케 한 일차적인 동인이었고, 그의 메시지의 일관된 주제였다.


2. 변화의 복음

이 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주제는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개개인의 변화된 삶이다. 여기서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당위로 한다. 첫째는 이 생에 속한 일체의 것들이 가지는 가치의 유한성과 덧없음이다. 이 목사는 "세상 땅위의 일은 무엇이나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낡아지고...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도 처음에는 좋으나 나중에는 싫어지는 것"으로 본다. 문제는 이것들이 인간의 정욕과 어울어져 마치 무한하고 영원한 것처럼 오해되어 받아들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추구하며 좇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잠깐 동안 가는 중에도 눈물과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이다... 이 세상은 벌레가 먹은 박넝쿨이다... 솔로몬의 부귀 영화도 벌레먹은 박넝쿨이요, 바벨론의 장한 경치도, 진시황의 만리장성도, 일본의 천황도, 공산당의 스탈린도 다 벌레먹은 박넝쿨이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중심으로 일시적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다가 망하고 만다.


청년 시절에 병들어 생사의 기로에서 세상만사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이 목사로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유한한 가치들의 정체를 직시하고 그들의 지향점을 수정하는 것 이상으로 시급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변화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로의 가치의 변화이다.

성도들이 변화해야 하는 두 번째 당위는 우리에게 비밀로 남아있는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이다. 이 목사의 신학 사상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재림은 이 목사의 모든 사고와 삶의 기반이다. 재림이 있다는 것은 곧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반증이고, 따라서 예수의 재림이야말로 모든 것의 완성이요, 구원의 종국이요, 세상가치가 예수로 변해야 하는 이유이다. 동시에 성도의 삶을 규정하는 틀이고, 그 삶에 긴장감과 탄력성을 부여하는 동인이다:

우리가 애모하는 신랑 예수님 오실 날은 절박해 간다. 자연계의 징조를 보든지, 국제와 사회 징조를 보든지, 교회상태를 보든지, 유대나라가 독립하는 것을 볼때에 우리 최대의 소망은 신랑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로 예수 사랑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변화의 당위 위에서 이 목사는 성도들의 삶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이 목사의 설교에서 재림과 구원에 대한 강조가 주류를 이루는 것을 들어서 그가 신학을 정신화하였고 성도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치중케 함으로써 복음이 가진 수평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무시하였다고 오해할는지 모른다. 만일 그의 메시지가 변화된 삶과 복음의 윤리적 차원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이런 오해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원이나 재림의 강조가 결코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발상으로부터 나오게 된 유일한 대안이 아니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것은 가치와 방향의 문제이고, 이 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됨으로써 동시에 세상적인 것에 대한 집중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그 가치가 바뀐 것을 토대로 그들의 일상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책임적 존재, 공존(共存)의 존재, 공의(公義)의 존재, 그리고 사랑의 존재로 살아가는 삶이다. 이런 삶과 복음의 연결은 이 목사의 사상을 허무주의로 해석하려는 시도와 상치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목사는 가치의 전도(顚倒)와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으로 규정한다:


십자가는 십자가대로 나는 나대로 있으면 십자가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철두철미한 회개를 하는 때에 세상이 나를 향하여 못박고 내가 세상을 향하여 못박는 것이다...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법을 중히 여기는 생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희생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인도하고 중보의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미치게 할 것이며 내가 십자가를 지고 화목케 하는 직책에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지금까지의 모든 죄로 물든 행태를 벗어 버리고, 모든 죄의 습관을 타파하며, 정신과 육체가 모두 새롭게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변화를 체험해야 하고, 이를 삶 속에서 증명해야 한다. 즉 철저한 신앙인은 삶 속에서 건덕을 보이는 철저한 생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목사의 주장이다. 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유난히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지향하는 복음의 성격을 여실히 반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삶은 언제나 현재성을 가져야 하는 현재적 사건이다. 복음과 구원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현재를 문제삼는다.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도에게 주어진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가? 이 목사는 기도를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기도는 "신자의 생명이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행위요, 마귀에 대해 전투적 생활이요, 자신에 대해서는 성결의 생활"이다. 이 기도가 없이 인간은 사람을 사랑할 수도, 마귀를 이길 수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마음에 평강을 유지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이 깨어 있고, 하나님이 내신 삶의 의미를 완성해가며, 현재의 살아있는 생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기도의 용사들이 되어야 함을 이 목사는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다.


3.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복음

이 성봉 목사의 일생을 통해 볼 때, 그는 교단 지상주의자나 교단이라는 틀 속에 안주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부흥사역은 교단을 초월한 초교파적인 것이었고, 이 로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다. 가령 전국 부흥 목사로 임명받은 지 채 1년이 못 되어 그의 초교파적인 부흥사역을 문제삼은 교단에 의해 사역지가 남한으로 제한되었던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면서도 이 목사는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을 그대로 받고 그대로 의지하고 그대로 체험하고 그대로 전함을 나의 사명으로 알았다"고 고백할 만큼 자신의 신학적, 사명적 정체성을 자신이 속한 성결교회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즉 그는 이 복음이 성결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천명하면서도,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대강(大綱)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신하였기에, 그의 부흥설교에서는 이 사중복음이 대단히 빈번하게 강조된다.


1) 이 목사는 중생을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요 3:36; 고후 5:17)는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인다. 즉 중생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문제도 결국 중생치 못한 인간들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다. 이 중생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천국을 보며(심중천국, 요 3:3; 롬 14:17),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의를 행하며(요일 5:18; 2:29),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산 소망을 가지고(벧전 1:3), 세상을 이기며(요일 5:4), 서로 사랑하게 된다(요일 4:7).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흑암에서 나와 광명으로(요일 2:8), 죽음에서 생명으로(요일 5:24), 슬픔에서 기쁨으로(롬 14:17),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2) "성결"이란 하나님의 지상명령이요(벧전 1:15), 예수의 죽으심의 목적이며(딛 2:14), 성령의 역사로(벧전 1:2) 인간이 원죄, 죄의 성질, 죄알에서 깨끗함을 받는 것이다. 이 성결은 불의한 습관과 자범죄에서 떠나는 것뿐 아니라 언어와 사상의 정결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목사가 이해하는 성결은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삶의 정결까지를 의미한다. 이 성결로 옷 입을 때에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있고(히 12:14; 마5:8), 귀히 쓰는 그릇이 되며(딤후 2:20), 사랑의 사람이 된다(벧전 1:22).


3) "신유"의 복음은 모든 부흥집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메뉴로 소개되는 "이적"의 복음이다. 이 목사 자신이 죽음의 질병으로부터 하나님의 신유를 여러 차례 체험했고, 그의 목회 사역과 부흥사역에서도 신유가 빈번히 나타났었기 때문에, 신유는 이 목사가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신을 가지고 전했던 복음이다. 그러나 이 목사가 밝히 듯이, 이 신유는 초자연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그 만큼 신비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고, 또 한국교회에 출현했던 이단의 공통적인 특징이 신유를 빙자한 신비주의의 강조현상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간파한 이 목사였기에, 그 자신의 분명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신비주의적 시도를 거부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우리의 신앙이 감정과 기분으로 죄우되지 말고 말씀에 굳게 서야 될것이요, 기사 이적에 관심을 두지 말고 말씀의 지식으로 이단과 사설을 퇴치해야 할 것이다.


4) "재림"의 복음은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 목사의 인생관과 세계관 그리고 그의 사역과 이생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당위성을 제공하는 틀이다. 그의 세계관과 인간관이 허무주의의 경향으로 해석되어서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재림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올바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품격을 닮아가면서 이생을 살지 않는 한, 재림의 주 앞에 설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기사를 믿는다면, 이러한 이 목사의 태도를 재림이라는 보상을 바라는 심리에서 비롯한 것으로 간단하게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주의 재림이야말로 하나님의 최대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 소망이라고 본다(복음의 종교, 66). 주의 재림은 도적처럼 임하는 것으로서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 날이 멀지 않았다. 이 목사는 성서적 신앙을 바탕으로 그 근거를 당시의 국제, 사회의 정세, 자연의 징조, 교회와 인심, 유대 나라의 독립 등에서 찾았으며,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종말론적 긴박감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궁극적 관심은 재림의 시기가 아니라 재림을 대비하는 자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재림을) 준비할 것인가? 먼저 깨어서 준비하라 (기도).. 마음의 띠를 띠라(진실, 근신, 사랑, 봉사)... 등불을 밝히 켜라(말씀).


이 재림의 날이 비밀로 덮여 있기 때문에, 이 날에 대한 성도의 준비는 전인적인 자세로 '항상' 해야 하는 것이고, '생활 그 자체로 일상 속에서 해야 하는 것이고, '오늘이 그날'이라는 종말적 위기감과 긴장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그의 재림관이 철저한 종말론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재림의 산술적 시기에 집착하는 일부 다른 부흥강사들과 달리 건전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했다.


4. 위로와 희망의 복음

이 성봉 목사의 설교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는 위로와 희망이다. 그가 사역하던 당시의 상황이 '절망', ' 빈곤', ' 낙망', '괴로움' 등으로 정리되는 민족사 최대의 고난의 시기였음을 생각할 때, 이 요소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목사가 제시하는 복음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교회와 성도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가 외친 회개의 복음이 이 목사가 스스로 진단하는 생명의 길이었기에 이런 강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따라서 그의 설교의 특징이 대부분 준엄한 꾸짖음에 있었다는 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병든 아이가 나을 수 있는 처방이 분명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입에 쓴 약을 복용시키는 것이 당사자에게 대단히 고역스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처럼, 곤경에 처한 회중을 살리는 처방도 역시 급격한 무리를 피하는 지혜가 요구될 수 밖에 없다 할 것이다. 비록 고통으로 질식당하는 상황에서 생명을 주는 처방이 급박하다 하더라도, 설교가 위로의 복음, 치료의 복음이 되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도 백성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조금만 참으시오, 애기(광복)를 낳습니다."하며 위로하였고, 한국 전쟁의 상처 가운데서도 이 위로의 메시지를 멈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나와야 그 턱이지 요사이는 아이낳고 훗배앓이를 이렇게 오랫동안 앓는가? 아니다. 적은 고통이 있으면 적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이 있으면 큰 기쁨이 있으니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이다. 세계적인 고통이 있으니 세계적 기쁨이 있을 것이다. 소망 중에 즐거워 할 것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목사가 회중의 고통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통의 신학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배려했다는 점이다:


가시밭이 백합화에게 불행이 아니다. 가시밭이 없으면 장난꾼 아이들이 와서 그 꽃을 꺾어갈 것이나 가시밭이 있음으로 장난꾼들이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사면에 있는 환난고통의 울타리가 결단코 불행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라는 것을 아는 자는 참으로 행복하다.


이 목사가 성회에서 즐겨 사용했던 천로역정을 광의적 의미에서 연속설교라 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도 다음과 같은 그의 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달콤한 은혜도 있고 쌉쌀한 은혜도 있다. 단것만 너무 좋아하면 이가 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쓴 것을 화제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대접하는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유치한 신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니 애석한 일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에서 보면, 모든 고난은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전제로하여 이 목사는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따라서 환란은 부정적인 의미와 기능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환난은 인간으로 기도하게 하고 기도는 환난을 인간에게서 떠나게 하여 감사하는 마음과 생활이 되게 한다." 따라서 역경에 처한다 해서 낙망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된다. "캄캄한 밤이 지나면 광명한 아침이 오는 것이며, 엄동설한이 지나면 양춘가절이 오나니, 고통이나 시험이 올 때에 주께 버림받는다 의심하지 말고 오직 소망중에 즐거워해야 한다."


절망이나 낙심이 옴은 천리원칙이다. 고통은 즐거움의 원칙이다. 십자가 후에는 부활의 승리,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작은 고통에는 작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에는 큰 기쁨이 오나니 어려운 일 당한대로 족한 은혜를 주신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통 절망 상태이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적 환락산의 기쁨이 우리 앞에 전개됨을 바라보아 즐거워할 것이다.


그의 이런 위로와 희망은 어떤 구체적 사안을 예견한 결론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만일 부요하고 평화로운 연락의 계절이 왔다면, 동일한 근거를 들어 이 목사는 경고의 메시지를 발했을 것이다. 이 목사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건, 상황 하나 하나에 즐거움과 고난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안목,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제대로 직시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의 핵심 주제들은 구원과 죄, 회개와 변화된 삶, 그리고 희망과 위로의 특징을 갖고 있고, 이런 의미에서 설교사에서 발견되는 부흥설교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대개 부흥집회에서 설교가 최하 50분 이상의 분량이었음을 감안하면, 우리가 인용한 그의 설교집에 수록된 설교들은 그가 외친 내용의 핵심부분으로 요약된 것임에 분명하다 할 것이다. 매일 계속되는 부흥집회 속에서 이 목사는 이러한 메시지를 기조로 복음을 전했고, 이 복음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회개, 각성하여 사회의 한 부분을 건실히 담당함으로써, 이 목사의 부흥설교는 신앙적 성격만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평가와 의미를 함께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그의 설교에서 '전도'라는 주제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정 교회가 아닌, 노천이나 천막집회에서 주로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열렸던 17∼19세기의 미국의 부흥운동이나 80년대 들어 초교파적으로 개최되던 국내의 각종 전도운동 집회가 전도에 치중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런 특징은 이 목사의 일차적 관심이 복음에 올바로 서지 못했던 기존의 교회와 신자들을 바로 세우고 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어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양육하는 것에 놓여 있는 데서 비롯한 듯 하다. 올바른 교회와 성도가 없이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급급함으로써 대책없는 사이비 교인만 양산하는 것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 목사의 이런 부흥 메시지의 방향은 분명히 타당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 부흥설교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모든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선포되는 설교가 회중에게 올바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설교가 무슨 내용인가 하는 음성의 명확성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쉽게 이해되고 또 듣고자 하는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까지도 이 전달의 문제에 포함된다. 더욱이 부흥집회는 개교회의 연중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이고, 또 축제적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에 부흥집회는 일정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성회가 끝난 후에 이 목적의 실현 여부도 역시 성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부흥설교는 당연히 통상적인 예배의 설교보다 여러 면에서 다를 수 밖에 없다. 평시 예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설교시간, 지적인 면보다는 정적, 감정적 요소에 호소하는 설교, 성회 기간에 맞춘 설교주제 그리고 설교를 들으려는 회중의 준비상태 등이 부흥설교를 다른 설교와 구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성봉 목사가 한국교회의 대표적 부흥사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인격적인 면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의 부흥설교의 탁월함에 대한 인정이요, 나아가 그의 설교가 설교전달(Communication)의 한 모범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추상(秋霜) 같은 죄의 질책에 가슴을 뜯으며 뒹구는 회중, 재치와 유머에 웃음바다가 된 예배당, 회중과 설교자가 하나가 된 설교시간, 수많은 사람의 회심과 변화! 이 목사의 부흥집회를 이렇게 정리한다 할 때, 과연 이런 묘사가 가능할 수 있었던 동인은 어디에 있었나? 우리는 설교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사항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1) 먼저 이 목사의 설교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사고의 전개 방식을 보면, 전 설교에 걸쳐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설교 가운데 "천국"(마 5:2-3)이라는 설교를 예로 들어보자. 이 설교는 설교제목인 천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로 이루어진 서론과 천국의 종류를 다룬 4개의 본론대지 그리고 본론의 요약과 촉구 그리고 찬양으로 이루어진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목사의 설교는 통상적으로 한 개념, 한 단어에 집중해서 진행되는데, 이 설교에서도 천국이라는 단어가 설교를 풀어가는 핵심개념이 되고 있다. 이처럼 전하려고 하는 주제를 단순화한 이 목사는 본론으로 가는 경과구(經過句)로서 "그러면 성경에서 말한 천국을 몇가지로 말 수 있으니 이것을 성경을 근거하여 말씀드리려 한다"(임마누엘 강단 90.)는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설교가 다룰 내용이 무엇인가를 회중으로 쉽게 파악하도록 한다.

본론에서 사고의 전개 방식은 대지에 대한 정언적 표명 - 예화를 통한 개념의 경험차원으로의 접합 - 교훈의 진술로 나타난다. 즉 전하려는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펼치는 일직선의 전개방식이다. 특히 다양한 예화를 통해 피상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이 되기 쉬운 한 개념을 경험적 차원으로 끌어 내리므로써, 회중의 이해를 도우고 동시에 회중의 집중도를 높이는 시도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결론에서도 주로 본론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한번 더 요약, 정리하고 이것을 회중의 일로 연결시킴으로써, 회중과 말씀 사이의 괴리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그의 설교진행이 너무 많은 성경구절의 인용에 의존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진행방식은 성경에 근거한 교훈의 전달이라는 면에서 회중에게 신뢰감을 심어줄 수는 있지만, 본문에 대한 깊이있는 전달을 방해하고, 또 설교가 하나의 스토리로 전개될 때 가장 이해도가 빠르다는 기본적인 전달의 원칙을 무너뜨림으로써, 회중의 집중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의 설교에서 오직 하나의 주제만을 다룰 것을 주장하는 독일을 실천신학자 빈처(F. Wintzer) 교수의 말대로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설교에서 한 주제에 집중하는 이 목사의 설교는 회중들에게 설교주제에 대한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적합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2) 이성봉 목사의 부흥설교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특징은 그의 언어 사용이다. 그가 설교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는 대단히 일반적이고 평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들이다. 그가 하나의 진리나 개념을 설명할 때, 형이상학적이거나 학술적인 단어의 사용을 철저히 금하였다. 가령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잠재된 죄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은 꼭 구정물통같아서 가만히 두면 물이 맑아 깨끗한 듯 하나 한번 막대기로 속을 휘저으면 생선가시, 콩나물찌꺼기, 김치줄거리가 우그르르 떠오른다"(임마누엘 강단, 45).

전하려는 교훈을 생활 속에서 찾아 접맥시키는 이러한 방식이 회중의 이해를 도왔음은 자명하다. 특히 이야기를 듣는 회중이 '회화적'으로 내용을 그려볼 수 있게 설교를 풀어나가는 것은 이 목사의 설교가 갖는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모두에게 익숙한 속담과 표현, 위트와 익살을 즐겨 사용한다. '사돈의 팔촌 콩나물 대가리가 다 와서 뜯어 먹으려 한다', '노루때린 몽둥이 삼년 우린다는 격으로', '태평양의 물고기가 물이 없어 죽고 요셉의 7년이나 풍년든 창고의 생쥐가 고파 죽었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다 할 것인가' 등등의 표현은 추상같은 죄의 질책 속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윤활유의 구실을 했음이 분명하다.

혹자는 이 목사가 설교 시에 부흥사 최초로 욕설을 도입한 장본인이고, 이런 욕설이 별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 않은 것은 자기를 비하하는 한국민의 심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육성이 녹음된 설교 테이프나 어떤 자료, 어떤 증언에서도 이 목사가 설교 중에 욕설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친근미가 넘치는 생활언어로써 진리를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 내리는 것과 오늘날 흔히 일부 부흥사들에게서 보이는 저속한 강단 언어는 구별되어야 마땅하고, 이런 맥락에서 이 목사는 철저히 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 목사의 설교가 감동을 끼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음성이다. 이 목사의 음성은 청명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음색이 가미된, 기도로 단련된 음성이다. 조용하면서도 중후하고 맑으면서도 기도의 오랜 흔적이 역력한 그의 음성은 설교자에게서 가장 이상적인 음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한국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약간 쉰 설교자의 음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더더욱 그러하다. 훈련된 음성이 설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성봉 목사를 통해 교훈받게 된다.


3)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 목사의 설교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의 예화사용과 설교 중의 찬송이다. 이 목사의 설교에는 통상 그 대지수 만큼 예화가 등장하는데, 주로 이 목사 자신이 각종 집회와 목회에서 체험한 내용과 천로역정 인용이 예화의 주된 특징을 이룬다. 예화의 기본적 기능이 철학적, 형이상학적 진리나 개념을 경험의 차원으로 연결시켜 회중의 이해를 돕고, 이완된 회중의 집중력을 다시 끌어 올리며, 성서 시대와 현대를 이어줌과 동시에 격렬한 설교진행으로 회중에게 정신적 여유를 준다는데 있기 때문에, 적절한 예화의 사용은 설교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이 목사의 경우에는 예화들이 자신의 체험과 부흥사역의 실화에서 얻어진 것이거나, 천로역정과 같이 회중에게 생소한 소재였기 때문에, 회중에게 주는 인상은 더욱 강력한 것일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가 사용하는 예화들의 주제는 대단히 다양한데, 주로 신앙으로 인한 삶의 변화, 불신이 가져온 결과 등 신앙과 관련된 예화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부흥사역의 목적이 심령의 변화와 그에 수반하는 삶의 변화에 있었기 때문에, 회중들에게 구체적인 체험적 차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사의 예화 사용이 드러내는 한계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예화 사용의 특징은 교훈과 진리, 한 개념의 진술을 예증하는 방식으로만 설교에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예화는 한 개념이 사건화된 실상을 소개하는 형식만을 취하고 있어서 진행되는 논리에 잘 부합할 뿐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도 정확히 연결되는 장점이 있지만, 한 개념 뒤에 이어 나오는 설명과 예증으로서의 예화라는 일률적 양식만을 고집함으로써, 예화 자체를 설교논리의 전환이나 설교구성의 한 고리와 틀로써 활용하는 다양성은 그의 설교에서 발견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 목사는 자신의 설교 중에, 혹은 설교를 마치면서 자신이 찬송가 곡조에 맞추어 작시한 찬송을 즐겨 애창함으로써, 한국교회 강단에 찬송과 설교의 연결을 보편화하였다. 설교 중에 찬양하는 것은 이미 서구의 부흥집회에서는 일반화된 것이지만, 이 목사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한국강단에는 낯선 형태였고, 따라서 이 목사 이후 설교 중의 찬양이 부흥설교 뿐 아니라 일반설교에도 널리 사용된 것은 그가 끼친 영향에서 비롯한다고 하겠다.

그의 설교집에는 대략 17편의 설교가 찬양으로 끝맺고 있지만, 실제 부흥사역의 현장에서 이 형식히 훨씬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특히 그가 애창한 찬송의 가사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것이었기 때문에, 회중에게 전달되는 감화가 더욱 더 체험적, 사실적이었다. 이와 동시에 설교 도중의 찬송은 설교가 '연설'이라는 일관된 형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설교수용의 구태성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함으로써, 전체 분위기를 일신하며 계속되는 설교에 탄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시도이다. 더욱이 그가 사용한 가사는 설교내용을 정리, 보강하는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설교의 연장선상으로 수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설교의 대미(大尾)에 사용된 찬양내용이 주로 성도들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와 용기를 심어 주는 내용과 하나님의 돌보심, 그리고 성도의 각오와 봉사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설교 도중에 사용된 찬양내용이 주로 인생의 허무나 덧없음 등과 관련되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설교의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기능도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의 삶과 어려움 속에서도 낙망치 말고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 가운데 살 것을 회중들에게 권면하려는 이 목사의 치유적 의도가 동시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도로 단련된 은혜와 영감의 음성에 인생의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달관(達觀)의 신앙을 실어 노래하는 이 목사의 찬양은 그 자체로서 설교였고, 온 회중을 은혜의 포근함으로 감싸는 이불 그 자체였다.




[처음으로]

Ⅳ. 나오는 말

- 한국교회 부흥운동에서의 이 성봉 목사의 의미와 부흥 설교를 위한 발전적 제안-




이상에서 우리는 이 성봉 목사의 생애와 신학 그리고 부흥사로서의 그의 부흥설교를 살펴보았다. 그의 설교가 설교사에서 드러나는 부흥설교의 제 특징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설교가 부흥설교의 전형임을 살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성봉 목사의 생애로부터 성직자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을 수 있었음은 본 소고의 가장 큰 수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제 1세기를 넘어선 한국 개신교사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부흥운동과 부흥회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양적 질적 성장과 변화를 가져오는데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맥락에서 우뚝 서 있는 이 목사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본 소고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만만치 않은 이러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약술은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대목이다.

우선 민경배 교수가 분류하는 것처럼, 조선 교회의 부흥회가 한국 최초의 부흥사인 영계 길 선주(1869-1935년)의 제 1기와 김익두(1874-1950년)의 제 2기로 이어진다면, 제 3기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성봉 목사라 할 수 있다. 이세 인물들이 민족의 수난시대를 몸으로 겪으면서 사역을 감당했다는 점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학이 근본주의에 가까운 보수-복음주의를 지향하였고,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도 독특한 체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대단히 유사하다.

하지만 부흥사로서의 활동과 부흥설교의 강조점에서는 - 세 사람이 모두 회개와 삶의 변화라는 강조점에서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가령 길선주 목사가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종말론, 예수의 재림과 종말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김익두 목사는 무엇보다 기적의 신유와 성령의 내적 임재를 강조하였다. 이에 반해 이성봉 목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물론 그에게서 주의 재림은 그의 메시지와 성도의 삶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틀이지만, 길 선주 목사와는 달리 요한계시록으로부터 그 개념을 이끌어내지 않았고, 또 주의 재림을 강조하면서도 이 틀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도의 성결한 삶으로의 변화와 성장을 역설한 것은 이 목사만의 특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이 목사가 스스로 신유의 능력을 강조하고 몸소 체험했으면서도, 일체의 방언이나 신비적 은사를 배제하였던 점과 부흥회의 주안점을 신비적 은사보다는 말씀에 두었던 점은 부흥사역의 한 전기와 모범을 제시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즉 무분별한 성령의 강조와 은사의 강조, 탈역사적, 정신적 영역으로의 신앙의 이탈을 차단하면서,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가치의 정립과 이를 위한 변화된 삶을 제시함으로써, 부흥회의 성격을 더욱 더 '건전'하게 방향지웠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목사가 부흥사역에서 애용한 천로역정이나 명심도 강화는 부흥회의 새로운 형식과 시청각의 효과를 부흥회에 도입하는 전기(轉機)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의 부흥회가 은사집회나 설교 이외에 말씀의 효과적인 선포를 위한 특별한 해법이나 방식을 갖고 있지 못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 목사가 시각자료를 이용한 명심도 강화와 시리즈로 엮어가는 천로역정 강화를 말씀증거의 한 수단과 도구로 삼은 것은 부흥집회의 인도와 관련한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볼거리'가 귀했던 그 당시의 회중에 대한 적절한 배려였다는 면에서 이미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혜안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성봉 목사에게서는 소위 오늘날 불건전한 부흥회로 인하여 교회가 병들고 성도들이 상처받게 만드는 폐단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초창기 부흥회와 관련해 긍정적 평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 광선 교수는 한국교회 초기의 부흥운동이 "사회적 변화와 역사의식이 결여된" 성서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복음을 복리와 축복으로 환원시켜 단순화한 탈지성의 신앙형태"라고 평가하였고, "성령의 이름으로 무속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신학적 우려를 낳게 한다"고 비판하였다. 아마도 이런 평가는 오히려 오늘 날의 부흥회에 더 적합한 비판이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평가가 갖는 타당성을 인정하고 미래의 모든 부흥운동의 한 지표로 삼아야 하지만, 이러한 신학적 평가에는 언제나 그 당시의 상황과는 분명한 시간적 거리를 둔 채, 분석적 여유를 가진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한가로움이 스며있음도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이 목사가 3.1 만세 운동으로 인해 체포될 위기에까지 처했던 과거가 있었으면서도, 비판자들이 말하는 소위 '사회적 역사적 차원을 배제한' 복음을 전했던 것은, 그의 신학적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그 방향이 최고의, 그리고 최선의 몸부림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신앙은 일차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개인을 문제삼을 수 밖에 없고, 이 개인의 신앙 성격화에 부흥사가 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부흥사가 설 수 밖에 없었던 '물려받은 운명적 신앙유산'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국난의 시대에 도탄에 빠진 백성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복음화의 첨병역할을 함으로써 긍정적 평가를 받아오던 부흥회와 부흥설교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최초의 순기능을 상실한 채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보다 기도와 기도를 통한 성령받음이 강조되고, 신비적 체험에 대한 지나친 집착, 부흥사의 영적 체험 위주와 독선적 교만을 지적한 우완 용의 비판, 500명의 응답자 중 30%가 영적 갈등을 느낀다는 목회와 신학의 설문조사, 그리고 종교에 대한 감정적 접근, 신학의 무시, 말세적-피안적 관심 그리고 일상을 통한 은혜의 경시 등으로 부흥사를 파악하는 김 정준의 평가 등은 오늘의 부흥회와 부흥사에 대한 시각이 어떠한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구원사적 차원의 관심에서 나오는 선포 대신에 복음을 물질적, 이생적 복락으로 치환시키는 탈복음화와 교회건축 등과 같은 외형적 동기로부터 성회를 개최하는 등은 성회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비판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존재하는 한 교회의 부흥에 대한 염원은 지속될 것이고, 기독교가 말씀의 종교인 한, 설교도 역시 그 위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 개인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야 한다는 당위와 복음의 횡적 차원, 사회적 차원도 역시 계속 제기되어질 것이다. 복음이 가진 사회적 차원의 결여가 지금까지의 부흥운동과 부흥설교가 가진 결점 가운데 하나였다면, 이러한 비판의 겸허한 수용과 함께 기존의 복음이 지켜온 '영적 차원'이라는 또 다른 면을 상실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흥사역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은 이 성봉 목사가 걸었던 그 모범을 따라 진실하고 전인적인 성직자의 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소명의 투철함이 인격의 결여와 상업적 발상으로 대치되어 있는 한, 부흥사역은 언제나 개혁의 당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수많은 부흥집회와 부흥사가 있으면서도, 이 성봉 목사를 이을 만한 4세대 인물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동시에 부흥설교의 내용이 깊이 있는 성서연구에 기초하기보다는 설교자 자신의 재능과 인위적 카리스마, 그리고 회중을 웃기려는 시도로 일관되는 현재의 일반적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는 부흥설교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으나, 그런 방식이 뿌리깊은 신앙인을 양육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우리는 익히 경험해 왔다. 따라서 이제는 설교자가 주체가 되지 않고 말씀이 주체가 되는 설교의 진행, 그리고 지, 정, 의의 요소를 충족시키는 '연구하는' 부흥설교가 자리잡아야 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부흥설교의 주제로서 애용되어온 죄, 회개, 구원, 믿음, 삶의 변화만이 아니라 다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 속에서 성도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써 왜곡된 것을 바로잡고 개혁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역할, 그리고 성도가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 져야하는 복음의 공동적 성격과 연대적 책무도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강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흥설교의 구성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애용되어 왔던 천편일률적 제목설교, 주제설교 외에도 이야기로서의 설교, Storytelling 등과 같은 다양한 설교패턴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오디오에서 비디오로의 변화, 그리고 총체적 영상매체의 등장 등 전달매체의 급격한 변화를 염두에 둘 때, 설교의 전달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또 지금까지는 부흥설교라는 것이 부흥집회라는 특정한 기회에만 행해지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설교의 프로그램화를 통해 평상시의 예배에서도 이 형태의 설교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중의 경향이란 언제나 지적인 면을 선호하는 방향과 영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방향의 혼재(混在)라는 특징을 갖고 있고, 또 이것이 과학의 발전과 무관하게 항상 존재하는 요소임을 생각하면, 설교의 프로그램화를 통한 부흥설교의 평시화는 깊이 고려되어야 할 측면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온 유산 위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진행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 지극히 평범한 상식은 부흥설교에서도 여전히 상식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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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1. 내가 본 이성봉 목사
2. 이성봉 목사의 부흥운동 재조명
3.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에 대한 신학적 해석
4. 이성봉 목사 부흥사역의 특징
5. 목회자로서의 이성봉 목사
6. 이야기 신학자로서의 이성봉 목사
7. 이성봉 목사의 생애와 설교
8. 이성봉 설교의 수사학
9.
이성봉의 성서해석학 수립을 위한 하나의 전진
10. 부흥의 희망과 해석학적 현실이해

좌 담
이성봉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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